기사 메일전송
왜 갈릴래아로 가라고 하셨을까?
  • 이기우
  • 등록 2019-04-22 17:53:33

기사수정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 사도 2,14.22-33; 마태 28,8-15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성전 안에 있는 최고의회 법정에서 고발을 당하셨으며, 빌라도 총독 관저에서 사형 언도를 받으셨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그 언덕 바로 아래에 잡아놓았던 돌무덤에 묻히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더니, 몇몇 여인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셔서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서라야 제자들은 그분을 뵙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왜 갈릴래아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갈릴래아 땅은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고장이기도 했고 제자들이 살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고장이었던 갈릴래아는 그 때문에 로마로부터는 무거운 세금도 징수당해야 했고 예루살렘에 사는 바리사이 출신의 부자 지주들로부터 수탈도 당해야 했던 슬픈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이 고장에 사는 가난한 이들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아픈 이들과 버려진 이들을 만나시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던 복음 선포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더러 갈릴래아로 가야 당신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당신처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전하라는 뜻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뵈옵고 확신을 얻게 된 열두 사도는 갈릴래아 지방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일대와 그리스, 로마는 물론 스페인 같은 유럽 남부 지역, 페르시아와 인도 같은 아시아 지역, 심지어 러시아 같은 유럽 북부 지역까지 가서 널리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 오늘날 우리에게 갈릴래아는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현장 모두를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지옥과도 같은 고통의 현실을 겪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이 전부인 양 살아가는 사실상의 무신론자들이 사는 곳이라면, 진리와 정의가 외면당하고 사랑과 평화가 사라진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사도들이 파견되어야 하는 갈릴래아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다는 것은 사람의 말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좋은 모범을 보여주었듯이,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는 십자가를 온 몸으로 짊어짐으로써 또 다른 예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로 새로 태어난 우리의 영적인 몸은 예수님처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견진되고 성숙하여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부활을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일로 미루는 사람도 있고, 순전히 영혼의 사정으로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이나 그 사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몸과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하느님의 뜻을 단 한 치라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전인적인 일이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예수님께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치부해서도 안 되고, 죽음 이후로 미루어둘 것도 아니며, 영혼 사정으로만 국한시킬 것도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지금부터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기를 힘쓰는 삶이 부활의 출발입니다. 갈릴래아로 가십시오, 거기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뵈옵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