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 이기우
  • 등록 2019-04-19 12:42:14
  • 수정 2019-04-19 12:45:40

기사수정


주님 수난 성금요일 : 이사 52,13-53,12; 히브 4,14-16; 5,7-9; 요한 18,1-19,42



오늘 우리가 거행하고 있는 주님 수난 예식은 파스카 성삼일 예식의 중심입니다. 어제 성목요일에 행한 주님 만찬 미사의 결과이면서 내일 행할 부활 성야 미사의 씨앗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사순 시기 동안 우리가 들어온 수난 복음의 총체적 결과이며 하느님 나라 안에서 맞이할 부활을 향한 필수적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사순 시기 동안 들었던 복음을 주일 강론을 중심으로 종합해서 상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던 재의 수요일은 주일만큼 중요했던 날이었고, 이날 복음은 산상설교 중에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종교적 의무를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알아듣고자 하는 영적 노동으로서 종종 단식을 수반합니다. 단식은 몸의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알아들어야 하는 하느님의 뜻에 집중하기 위해서 평소에 몸의 건강을 위해서 먹던 음식을 끊거나 줄이는 행위입니다. 이로 인해 절약된 몫을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데 씁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게 되면,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는 대상은 그 가난한 이들이지만 영적으로 은총을 받는 주체는 우리 자신입니다. 사실은 물질의 나눔으로 혜택을 입는 가난한 이들도 주는 이가 누리는 영적 은총의 자장 안에 들어오게 되면 더 좋지요. 그래야 물질의 나눔으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됩니다. 


제1주일에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빵과 권세와 하느님 시험에 대한 세 가지 유혹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말씀과 섬김과 믿음의 순종으로 저항하시고 물리치셨습니다. 이와 똑같은 유혹을 당하고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저항하고 물리쳐야 함을 일깨워주었던 복음이었습니다. 


제2주일에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화에 대한 기적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자단의 주요 간부 역할을 할 세 제자에게 당신에 관한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특별히 마련하신 이 기적 사건은 세 제자를 통해서 열두 제자에게, 그리고 다시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로 퍼져나가야 할 신앙의 신비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세 제자가 부활하실 예수님과 그분의 신성을 믿게 되었듯이, 세상 사람들도 거룩하게 변화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제3주일에는 불에 타지 않는 떨기를 통해서 모세가 부르심을 받은 일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기적을 보고도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아서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일에 대해 들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걸려 넘어지는 욕망의 불에 타지 않는 떨기처럼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제 때에 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처럼 세상 안에 사랑의 열매를 맺어주어야 합니다. 


제4주일에는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외받고 버려진 이들을 찾아다니시며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이들과 공동체를 이루셨던 예수님의 생활양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선택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계승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기회였습니다. 


성지주일에는 구약의 하느님 백성이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환영하다가 나중에는 거짓 메시아라고 매도하는 배신의 드라마를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하느님 백성이 저지른 이 어처구니 없는 과오가 안타깝게도 신약의 하느님 백성으로 불리운 가톨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여러 번 되풀이되었음을 뒤돌아보며 늘 새로운 마음으로 긴장감을 지니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함을 되새겼던 기회였습니다. 


사순 시기에 들려오는 이상의 메시지의 총 요약이 오늘 수난 예식에 담긴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우리가 미사 중 신앙의 신비를 환호하는 응답으로 외치는 다짐이,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하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라는 표현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라는 뜻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형성될 때, 우리에게 그분이 재림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처럼 사랑의 희생을 감수하려는 실천 행동을 할 때마다 그분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수난 예식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는 이미 이제껏 살아오면서 숱한 기회에 그분의 죽음을 본받는 작은 죽음들, 사랑의 희생들을 실천해 왔을 것입니다. 그 다짐을 실천하는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무수한 갈등과 번민, 상처와 보람도 따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바로 이 마음의 기억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거듭 거듭 다짐을 해야 합니다. 죽음으로만 부활이 있다는 것을, 죽어야만 다시 산다는 것을. 


또한 이렇게 성공한 기억들만이 아니라 실패한 기억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갈등하고 번민하면서도 끝내 희생을 실천하지 못한 망설임의 기억들, 그래서 두고두고 후회되는 기억들까지도 주님의 죽음 앞에 감출 수 없는 예물입니다. 다시 또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면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그분의 죽음을 따를 수 있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체조 선수들이 마루 운동을 할 때 마루나 바닥을 치고 나서야 도약할 수 있듯이, 누구나 이 바닥을 쳐 본 경험이 있어야 주님의 부활을 향한 날개짓을 우리도 힘차게 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도 역시, 죽어야만 다시 살 수 있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