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엄마의 오늘 메시지는 하나: “나 아직은 저런 폐가가 아니다”
  • 전순란
  • 등록 2019-04-12 12:17:15
  • 수정 2019-04-12 12:17:50

기사수정


2019년 4월 11일 목요일, 맑음



내일 임플란트를 해야 돼서 서울 갈 채비를 하는데 호천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가 어젯밤에 넘어져 머리에 피범벅이 되어 있는 걸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발견해 안성병원에 모시고 가서 이마와 머리를 꿰맸단다. 자기는 차가 없어 못 가니 나더러 가보란다. 오후에 천천히 가려니 하던 출발계획이 바뀌어 마음이 바빠진다. 


이달 말까지 지내려면 준비해갈 물건이 많다. 더구나 손님까지 초대를 해 놓았으니… 아마 서울에 가면 ‘또 안 가져왔구나!’ 한숨 쉴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나이 들수록 유무상통의 가훈 ‘놓아라!’를 되뇌지만 욕심이 아직도 마음을 차지해 못 놓고서 인생의 짐을 어지간히 많이도 끌고 다닌다. 


엄마는 미리내에 있는 실버타운 ‘유무상통’에 2002년에 들어왔다. 이모와 힘께. 처음엔 원장님과 직원들의 만류에도 이모와 방을 나란히 9층에 들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실버타운을 경영해본 분들의 경험대로, 이모는 7층으로 내려갔고 엄마는 8층으로 방을 옮기면서 서로 거리를 유지했다. 어렸을 적에 함께 자란 자매들이지만 시집가서 수십년간 떨어져 살아온 거리와 각자의 처지가 같지 않아 상처의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리를 두자 두 분은 (엄마가 82세에 들어와 10여 년간은) 거의 매일 산보를 함께 하고 서로 오가며 재미있게 사셨다. 



그러나 보스코의 대사직으로 내가 이탈리아에 가 있던 5년간 엄마는 자주 찾아오던 큰딸이 안 보이자 조금씩 우울증을 보였고, 약한 치매가 시작됐다. 치매약이 독해선지 엄마는 거의 잠에 취해 사셨고 어지러워 자주 넘어지고 말씀이 없어졌다. 괄약근이 약해지면서 엄마의 방과 옷에서는 냄새가 났고 우리가 찾아가면 청소를 해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빨래를 해드리느라 마주앉아 얘기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다 3층에 ‘절반캐어 서비스’가 필요한 분들을 함께 모아 방청소, 빨래, 일주일에 두 번 목욕을 도우미들이 해주는 서비스를 받으면서 우리 자식들이야 한결 마음과 몸이 편했다. 


그런데 3층에서 이제는 2층 병동으로 모셔가야 할 처지가 되었나보다. 엄마가 간밤에 넘어져 오늘 안성 병원에까지 실려가셔서 이마 네 바늘 뒷머리를 세 바늘이나 꿰매신 것이다. 내가 도착해서 간호과장님의 설명을 들으니 이젠 엄마를 병동으로 모시는 게 좋을 거란다. 서둘러 3인실 병실의 창가에 침상을 배정도 해 주셨다. 다만 내일부터 입원이 가능하다니 오늘밤엔 내가 엄마방에서 엄마 옆에서 지켜 보기로 했다.


▲ 엄마의 오늘 메시지는 이것 하나: ˝나 아직은 저런 폐가가 아니다.˝


병동입원에 엄마의 동의를 받아낼 겸 엄마에게 “사람들도 보고, 남이랑 함께 있으면 여러 도움도 받고, 심심하지도 않을 테니 2층으로 아주 내려가시면 어떻겠냐?”고 물으니 일언지하에 싫단다. “난 나 혼자 있는 게 좋다. 자식들이 오더라도 내 방이 있어야 잠이라도 자고 가지 않겠냐?”며 똑부러지게 말씀하신다. 


오빠가 지방에서 올라오다 저녁 8시가 넘어 들렀는데 “아프지도 않은데 겨우 요것 가지고 너까지 힘든 걸음을 하게 해서 미안하구나”하며 인사를 차리신다. 오빠가 어쩌다 다치셨냐고 물으니 (틀림없이 화장실 가시다 넘어져 다쳤는데) “글쎄 고사리 뜯으러 산에 갔다가 돌을 밟아 미끄러져 머리를 바위에 찧었구나” 하신다. “방안에 가만히 있으면 몸도 안 좋아지고…” 덧붙이시며 소설을 쓰신다. 사실 엄마가 산에 못 간 게 거의 5~6년은 된다. 


당신이 그렇게라도 말해야 좀 더 그럴 듯하다는 표정에 엄마의 자존심이 묻어난다. 오빠가 “고사리는 우리가 뜯을 테니 제발 이젠 산에 가지 마세요” 당부하고 떠났지만 이렇게 당신의 시간과 몸은 사위어 가는데 마음만은 여전히 봄날이니 어쩌란 말인가? 



정말 엄마는 오늘따라 정신이 유난히 맑았다. 어서 누우시라니까 “여기서 사람 보기가 어디 쉬운 일이냐? 큰아들이 왔는데 귀한 시간이니 함께 앉아 있겠다”는 말씀까지도 하신다. 손수 내 잠자리까지 봐주신다. 보스코는 엄마를 관찰하고 있다가 자식들이 당신을 영영 병동에 입원시킬까 본능적으로 눈치 채시고 당신이 정상이라고, 정신이 말짱하시다고 내보이시는 눈물겨운 노력이라면서 엄마의 병동입원을 적극 반대했다. 


난 정말 헷갈렸다. 아침에 전화로 소식을 받았을 때만 해도 ‘울 엄마 저렇게 힘드시다니 하느님이 데리러 오시는 걸까?’ 했지만 지금은 ‘엄마가 저렇게 살아계셔서 우리 형제 다섯의 구심점이 되어 주시는구나!’ 새삼 든든한 마음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