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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십자가 속에 자유의 부활이 숨어 있다
  • 이기우
  • 등록 2019-04-09 10: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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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화요일 : 민수 21,4-9; 요한 8,21-30



자유는 책임을 수반하며 책임을 이행함으로써 자유는 충실해집니다. 책임을 회피하게 되면 주어진 자유조차도 사라지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이 남에게 매이는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자유의식과 노예근성의 차이는 책임을 자각하고 자발적으로 이행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된 히브리 사람들이 몸은 해방되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로 광야로 나온 히브리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자유인처럼 성숙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역경을 스스로 헤쳐 나가려는 의지와 단련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이미 이집트 탈출 사건으로부터 천 년 이상 흐른 뒤였고 자신들의 왕국까지 건설했다가 멸망당하여 두 번째 종살이를 해야 했고 다시 풀려난 뒤였건만,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노예근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씩이나 되풀이되는 종살이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실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현세적 메시아는 다윗처럼 강력한 능력을 지닌 정치적 실력자였고 백성을 풍족하게 만들어줄 능력까지 지닌 경제적 실력자였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능력을 보여줄 때마다 혹시 저분이 메시아가 아니실까 하며 기대를 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기대야말로 노예근성의 발로였습니다. 


시나이 광야에서 노예근성에 젖은 히브리 사람들을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로 훈련시키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켜 사용하신 방법은 구리로 만든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고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리라는 금속의 색깔이 붉은 색이기 때문에 구리로 만든 뱀 모형은 흡사 자연의 진짜 뱀같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색깔이 아니라 그것을 기둥 위에 매달아 놓음으로써 예수님께서 달리실 십자가의 예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세상의 죄를 없애야 할 우리의 희생과 책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구약의 사건과 체험을 상기시키시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당신의 운명을 예고하셨습니다. 이 운명 예고는 세상의 죄를 없앨 수 있는 처방이기도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가 짊어질 십자가를 각오하고 다짐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세상의 죄를 없애야 할 우리의 희생과 책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 희생과 책임을 이행할 수 있어야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그분 백성으로서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악마가 조종하는 대로 끌려 다니는 악마의 하수인이자 노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집트가 아니라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영적인 출애굽 사건이며 진정한 파스카 사건입니다. 우리가 악마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 그리고 우리의 자유가 취약하기 짝이 없어서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지 이익이나 쾌락이나 편리함을 미끼로 해서 악마가 조종하는 대로 죄를 짓는 노예임을 알아차리는 것, 그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길은 우리가 사랑하는 희생의 책임을 이행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파스카 구원입니다. 


책임의 십자가 속에 자유의 부활이 숨어 있습니다.


20세기의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들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자화상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써서 고발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행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악마의 계략 역시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행한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 미끼를 고리로 결국 책임을 회피하게 만들어서 자유롭지 못한, 노예 처지로 만들고는 죄를 다반사로 짓고 살아가는 인간을 통해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주어진 책임을 이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여하시는 사랑의 책임까지 껴안음으로써 비로소 이룩될 수 있습니다. 책임의 십자가 속에 자유의 부활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책임을 감당하되 그날그날 하루치의 책임만을 감당하고자 노력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유인은 행복합니다. 책임을 감당하되 주어진 책임을 기쁘고 신나게 즐기며 이행하는 자유인은 더 행복합니다. 책임을 감당하되 남들이 시키지 않지만 하느님께서 부여하시는 책임까지를 부여안고 부활의 자유를 만끽하는 자유인은 가장 행복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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