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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각오, 부활될 희망
  • 이기우
  • 등록 2019-02-26 11:48:32
  • 수정 2019-02-26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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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사도요한 신부의 매일강론입니다. 이기우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3년간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습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지난해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는 깨달음, [이신부의 세·빛]으로 매일강론 연재를 시작합니다. - 편집자 주


2019년 2월 26일 : 집회 2,1-11; 마르 9,30-3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예고하십니다. 벌써 두 번째 예고입니다. 두 번이나 이 중대한 예고를 듣고서도 제자들은 도통 이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예고는 한 번 더 나올 것입니다만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세 번이나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예고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고, 그때마다 제자들이 보인 엉뚱한 반응을 보면 제자들이 받았을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스승으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 제자들은 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베드로가 나서서 제자들의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던 것이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들으신 대로,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 미심쩍으셨던지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는데, 이번에도 역시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엉뚱하게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게 되면 예수님께서 큰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는 자신들 안의 서열이 어찌될 것인지 하는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기가 막히신 예수님께서는 서열 다툼이나 하고 있는 당신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정색을 하고 타이르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깨닫기는 커녕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른 데 대한 보상이 무엇일지에 관심이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를 내세워 노골적으로 예수님께서 앉으실 영광의 자리 양 옆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나머지 열 제자들은 당연히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활의 영광에만 관심을 두고 수난의 고통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보다 못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목숨을 바치러 왔다.”


이런 일련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움직이는 힘과 기운이 전혀 달랐음을 알게 됩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힘과 기운 역시 더 강한 것이 더 약한 것으로 전달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수난을 통한 부활일지언정 하느님에게서 오는 힘과 기운으로 닥칠 운명을 예고하시며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수준에서 받는 힘과 기운의 흐름을 밝히시는 겁니다. 이에 비해서, 제자들은 그저 자신들이 받게 될 이익과 명예에만 집착하고 있어서 인간적인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없는 부활의 헛된 영광을 신기루처럼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통한 부활의 영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이지만, 십자가의 고통이 빠진 부활의 영광은 사막의 신기루같이 헛된 망상입니다. 우리들 신앙인이 살아가면서 얻어야 할 힘과 기운 역시 하느님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인생의 역경이 닥칠 때라도 허둥대지 말고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면 마지막에 번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친 시련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야 합니다. 금과 은도 불로 단련되는 법입니다. 인생의 역경과 시련은 우리를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순수한 존재로 단련시켜 주는 용광로와도 같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당신의 인생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진력하신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으로 부활되실 희망을 바라실 수 있으셨던 분입니다. 우리도 죽을 각오로 하느님의 뜻을 우리네 인생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의 전능하심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부활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을 각오로 현세를 살면서 부활을 희망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 신앙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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