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이기우
  • 등록 2019-02-25 13:03:20

기사수정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의 매일강론입니다. 이기우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3년간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습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지난해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는 깨달음, [이신부의 세·빛]으로 매일강론 연재를 시작합니다. - 편집자 주


2019년 2월 25일 : 집회 1,1-10; 마르 9,14-29



오늘부터 집회서로 독서를 읽습니다. 집회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남부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일부, 중동 아시아와 인도 북부 일대까지 그리스 문화로 통합되어 가던 기원 전 2세기 경에 헬레니즘이라 부르던 이 문화권 안에서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상실하지 않도록 신앙의 지혜를 전달하려고 쓰여진 책입니다. 유다인들의 집회에서 낭독되기 좋도록 일상생활에서 발휘되어야 할 지혜를 모아 놓았으므로 집회서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리스적 사유가 일상화된 세계에서 히브리적 사유가 융합되어 가는 선교적 과정을 볼 수 있게 하는 성서입니다.


인간 이성에서 출발하는 그리스적 사유는 사물과 자연현상, 인간과 사회현상을 분석적으로 해석하는 논리적 경향을 띠고 있고, 하느님께로부터 계시된 진리를 수용하는 신앙에서 출발하는 히브리적 사유는 통합적으로 해석하는 직관적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스적 사유에서 등장시키는 신은 인간 사회의 연장이요 투영일 뿐인 존재이기 때문에 히브리적 사유가 기반하고 있는 창조주이시오 심판자이신 하느님과 다릅니다. 


집회서의 저자는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유다인들이 문화적 충격이나 혼란을 겪지 않도록 그리스적 사유가 중시하는 인간 이성, 즉 로고스를 하느님의 지혜로 승화시켜 알아듣도록 토착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연의 결과로 만물이 생겨났다고 보는 그리스적 사유를 뛰어넘어 지혜야말로 하느님의 섭리임을 드러냅니다.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든가,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고,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라는 집회서의 진술이 다 그런 편집 의도의 결과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지혜의 길을 따라 살아가라는 충고가 집회서의 메시지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을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만들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괴롭히는 영, 즉 마귀를 예수님께서 쫓아내시는 장면을 보도합니다. 믿음이 약하고 따라서 기도로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 의지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마귀를 쫓아내어달라는 청을 받고서도 쫓아내지 못했던 일도 보도합니다.


거룩한 영을 몸소 받으시고 더러운 영의 존재와 그 제압 가능성을 인식하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기도의 힘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시고 마귀에 시달리는 아이의 아버지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군중에게는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시며 믿음을 지니라고 요청하십니다. 믿음과 기도로 영적인 현실을 인식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논리는 전형적인 히브리적 사유의 소산입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우리의 상황에서 종합해서 알아듣자면 예수님의 말씀에 담긴 히브리적 사유를 중심으로 하되 집회서가 토착화 시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리스적 사유를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오늘날 우리가 귀머거리와 벙어리 등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마 방식으로 돕는 일은 낯설기도 하고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여전히 괴롭히고 있는 구조악을 분석적으로 해석한 다음에 이 구조악을 공동선의 실천 행동으로 쫓아내는 일은 믿음과 기도로써 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는 오늘날에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영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는 이들에게 믿음과 기도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며, 더러운 영은 돈과 쾌락과 권력을 미끼로 하고 사람들의 욕망을 고리로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저지르게 함으로써 악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구조악을 양산해내는 악인들은 이 미끼와 고리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죄를 저지르도록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히브리적 사유의 관점이라면, 이 현실 안의 구조악에 대항해서 여러 차원의 공동선 행동을 실천해서 악을 선으로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로에 대한 그리스적 사유의 관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죄를 짓고 고통받는 현실 분석에 대해서는 히브리적 사유를 동원하고 사람들을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현실 대책에 대해서는 그리스적 사유를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뜻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우리의 존재이유인 동시에 활동목적입니다. 그래서,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