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7일 화요일, 맑음
어제 밤, 아니 오늘 새벽 2시에 호텔로 들어오는데 건물과 건물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보였다. 겨울 별자리에 시린 눈길이 머문 건 두고 온 내 나라 내 땅, 내 동네 지리산에도 저 별은 찬란히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매우 다른 민족성과 속 터지게 느린 모습에도 우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지구별에서 공존하는 지구시민이다. 함께 살고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공동체임을 서울 거리의 뿌연 미세먼지가 말해준다. 하늘에다 울타리를 치지 않는 한 번영도 오염도 서로 흐르며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던가?
그 늦은 시간에도 일기를 썼고 보스코는 사진을 골라 올리는데, 몇 년 전 칭따오(成都) 여행에서도 잘 올라가던 ‘휴천재일기’가 이번엔 중국의 모든 전자소통 수준이 놀랍도록 발달했는데도 불구하고 새벽까지도 올라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미중무역 보복 조치로 인해 구글과 유투브 등 미국의 대형 SNS 그룹의 중국 내 활동을 제재한다는 소식이 맞는지 그 피해는 고래싸움에서 새우 보스코가 보았다, 내 일기에 사진을 편집하여 최종적으로 올리는 것은 보스코의 몫이니까 하는 말이다.
5시 30분에 겨우 잠든 보스코가 7시에 일어나더니 아침식사를 하잔다. 중국 관광객이 대부분이고 밤비행기에서 내린 공짜승객을 재워주는 별 한 개짜리 대주점(大酒店: 호텔)에서 밤을 뜬눈으로 새운 우리는 따끈한 커피와 노랗게 구운 토스트에 계란스크램블, 재수가 좋으면 기름을 싹 뺀 아삭한 베이컨이라도 기대하며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승강기 안에서부터 강자를 만났다.
중국인들의 말소리는, 우리 주변에 시끄러운 상황을 두고, ‘호떡집에 불났다’고 하는 바로 그 정도였고 내가 기대하는 아침 메뉴와는 거리가 먼 낯선 음식들이었다. 그들은 가지나물, 볶음밥, 짱아찌, 호박찜, 양배추볶음, 쌀국수 등 걸게 한상을 차려먹고 먹은 분량만큼 식탁에 남기고 떠났다. 흰죽만 조금 먹고 그들의 먹는 모습만 구경하고는 올라왔다. 미루네서 시작한 절식의 연속이니 덕분에 잘됐다.
12시 호텔을 체크아웃 할 때까지 한목사네 방의 두 배는 되는 우리 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번 여행경로, 네팔인들과 가질 행사, 최목사님이 ‘공정무역’에 투신하게 된 배경, 당신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성격 차이와 극복방법, 성격유형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이해하는 법… 이런 여행 이런 시간이 아니면 나눌 수 없는 속얘기를 나누며 모처럼 여유롭게 보냈다.
호텔 앞 가게에서 개장 4주년이라고 기념춤(?)을 추는 여인들, 알 수 없는 낯선 모양의 과일이 가득한 과일상, 정말 빨강색을 좋아하는 습성대로 울긋불긋한 거리를 떠나며, 평생에 한번밖에 가 볼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인 여행 목록에 쿤밍 거리의 모습을 올렸다.
12시 30분 쿤밍공항에 오늘 새벽에 도착한 여섯 명의 후진 일행을 만나, 삐끼 아가씨가 너무 예뻐 그녀에게 홀려 4층에 있는 중국음식짐에서 최목사님이 사주시는 점심을 먹었다. 음식 이름도 내용도 모르니 음식사진을 보고 손가락질로 주문했는데 사진은 요망 사항이었고 나온 음식은 낯설었다. 그러나 모험심이 강한 우리 부부는 모든 음식에 도전을 해본다. 식탁에 가득한 음식을 두고도 쵸코파이 하나로 점심을 퉁치는 옆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남자들은 입국장으로 먼저 들어가고 국염씨랑 나는 이 지역의 특산물 값비싼 보이차도 구경하고, 월병과 꽃차, 꽃신도 보았다. 나는 출국검사 줄이 달랐던 한목사를 기다리느라 탑승시간이 촉박한 다른 동행의 애도 태웠다.
3시 15분에 이륙한 네팔행 비행기에서 바라다 보는 대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물결 같은 산맥, 포말 같은 구름, 황금머리칼을 풀어헤친 강줄기,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는 하느님의 업적에 찬미를 바칠밖에 없을 만큼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안나푸르티나와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며 카투만두에 도착하여 꽃둘레로 환영을 받았다. 어제 미리 도착한 일행과 함께 관광호텔에 자리 잡고 짐을 풀고서 관광식당으로 옮겨가 저녁을 먹으며 민속춤을 보기도 하고서 피곤한 하루를 매듭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