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0일 토요일, 해와 미세먼지
도시에서 미세먼지로 어지간히 시달리는 친구들이 나 사는 산속에라도 무슨 밝고 시원한 소식이 있을까 가끔 전화를 한다. “거기는 어때 산이니까 그래도 공기가 맑지?” ‘천만의 말씀! 여기 역시 같은 하늘 아래에 산이기에 손바닥만 한 나라에서는 여기도 거기와 마찬가지야’ 하려다가 그래도 좀 위로가 되라고 “음, 좀 낫긴 해”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맞긴 맞는 말이다. 그만큼 자동차가 적으니까.
이번 22일 아침에 서울을 가는데 26일에나 내려오니 보스코는 차를 갖고 가자는데 나는 박원순 시장이 불쌍해서 버스를 타고 가겠다 했다. 운전하기 싫은 마음이 더 크다. 젊은 사람도 다섯 시간을 운전해 가면 피곤하다며 드러눕는데 나는 도착해서 또 다른 일의 연속이다. 일기까지 쓰고 나면 자정을 넘기기도 하지만 보스코는 ‘마누라는 워낙 그런 여자’인 줄 안다. 나도 이제는 자중할 나인데 아무도 안 믿어주니 ‘지리산이라 미세먼지가 없으리라’는 생각과 흡사하다.
이런 나에게 ‘자중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미루. 우리 집 오면 모두 내가 한 음식을 기대하는데, 그니는 올 때마다 식재료를 가져와 자기가 한다. ‘나도 십년 전에는 저랬겠지’ 싶어 부럽기도 하다. 그리고 나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이 있는데 남해 언니. 나이로 보나 건강으로 보나 나보다 더 꾀를 내야 마땅한데, 우리를 불러서 차려 내놓는 음식을 보면 육해공군이 모두 근사하게 사열한 운동장. 차려진 음식을 보면 그 노고를 알기에 미안하고 송구스러운데 큰소리로 깔깔 웃어재끼는 언니를 보면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환갑이 되며 며느리와 한 집에 살게 되자 “나는 이 순간부터 부엌에 안 들어간다” 선언을 하셨고 주욱 그 선언을 지키셨다. 그런데 그렇게 일찍 놓아버린 가사 노동이 엄마의 노화를 재촉한 요인이라는 생각이 간혹 든다. 내가 요렇게 움직이는 게 젊은 활기를 유지하는 길이란 말씀!
오후 2시에 실상사 입구 ‘느티나무매장’ 2층에서 ‘한생명 인드라망 공동체’ 2018년 정기총회가 있었다. 3년 전 가입을 했는데 총회엔 한 번도 안 가자 총무님이 정성을 들이는 바람에 3년에 한번은 가기로 했다. 귀농 귀촌한 사람들, 떠났다 귀향한 사람까지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한 덩어리일 수밖에 없는 ‘한생명’! “산은 산으로. 강은 강으로. 들은 들대로 의연하게 살아 있습니다… 오라버니가 있어 누이가 있고. 동생이 있음에 누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제각각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모든 것들이 실은 그 어느 하나 따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라는 ‘한생명인의 기도’가 일깨우는 모임이다.
이사장 도법스님의 이끄심으로 회의는 진행되었고 180여 명의 회원들이 기초가 되어 마을공동체(실상사주변 산내마을 주민 전체)에 장터를 만들어 생산과 판매 나누기를 하고, 산내마을을 하나의 박물관으로 보고 걷는 박물관길 만들기, 산내재능은행, 귀농귀촌자 산내 안내교육, 실상사농장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 활동, 나눔 텃밭, 나눔 텃논, 수요울력, 마을울력, 그 외에 ‘반찬 나눔’, ‘마을사람 돌봄 활동’, ‘지역연대 활동’…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한다.
나는 다만 ‘이웃 마을 소비자’로서 공동체에 가입하여 그들이 생산하는 물품을 구입하고 회비를 내서 그들의 활동에 연대하는데서 그치고 있다.
날씨가 푹해서 마당 화단과 텃밭을 정리하는 보스코
오늘 분도출판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화집’ 『독백 獨白 Soliloquia』이 출판되어 증정본이 보내져왔다. 분도의 ‘교부총서’가 (이형우 아빠스마저 돌아가시자) ‘성염 총서’라고 불릴 만큼 보스코 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오늘도 종일 펠라기우스의 저술들을 들여다보고 있을 만큼 수년째 아우구스티누스의 ‘펠라기우스 논쟁’ 저서들과 씨름하는 중인데 원고파일들이 여러 컴퓨터에 흩어져 있어 꼬박꼬박 최원오 교수에게 초벌작 완성작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서 보관시키는 중이다.
저녁에는 미루와 이사야가 이번에 뉴질랜드로 ‘워크페스티벌’을 떠나는 작은아들 안셀모를 데리고 새해 인사차 들렀다. ‘미루표 잔치국수’로 저녁을 하고 자칫 쓸쓸하고 외로울, 산속의 밤에 위로를 주고 갔다. 감기와 알러지로 고생한 보스코도 귀요미가 다녀가니 생기가 돌아온다.
미루가 만들어온 ‘유자쌍화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