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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가난한 예수 92 : 부활에 대한 토론
  • 김근수
  • 등록 2017-10-17 10:56:24
  • 수정 2017-10-18 18: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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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 몇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28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정해 준 법에는 형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어 살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30 둘째가 형수와 살고 31 다음에 셋째가 또 형수와 살고 이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형수를 데리고 살았는데 모두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2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33 이렇게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34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가지만 35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저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습니다. 36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일도 없습니다. 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37 모세도 가시덤불 이야기에서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으로 모세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38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입니다.” 


39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학자 몇 사람은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였고 40 감히 그 이상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루카 20,27-40) 




정치와 국가권력의 관계라는 초대교회에 중요한 주제를 앞에서 논한 다음 부활이라는 교회 내부 주제를 다룬다. 예수는 적대자들보다 논리적으로 뛰어나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옳다는 사실을 루카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루카는 마르코 12,18-27에 나오는 이야기를 참고하고 고친 것 같다. 40절에서 루카는 더 이상 예수에게 묻는 사람이 없었다며 합창단의 마지막 곡처럼 결론(루카 5,26)을 내리고 있다. 


“여러분은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권능도 모르니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마르코 12,24), “여러분의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루카 12,27)을 루카는 삭제했다. 예수는 말을 참 야박하게도 한다. 질문자가 얼마나 무안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던가. 스승으로서 예수의 훌륭한 모습을 흐리지 않기 위해 루카는 예수의 거친 말을 빼버렸다. 


사두가이파에 대해 알 수 있는 문헌은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 사해에서 발견된 문서, 신약성서, 그리고 랍비들 문헌이다. 사해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사두가이가 아니라 에세느파 문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사두가이파는 다윗 시대에 활약했던 중요한 사제 사독(열왕기하 15,24-37; 17,15; 19,11-12)에게서 유래한다. 공통년(서기) 이전 623년 요시아 개혁 때 왕족 후손들은 예루살렘에 사제 왕조를 세웠다. 


그로 인해 지방에 살던 사제들(레위족)을 차별하는 결과가 생겼다. 수도권 지배층 사제들과 지방 사제들 사이에 신분과 계급, 경제력에서 큰 차이(에제키엘 44,10-14; 40, 46; 43,19)가 생기게 되었다. 종신직 대사제가 나타나고 독점 지위를 행사했다. 사제 계급 내부에서 갈등, 추방, 박해 등이 자주 일어났다. 가톨릭에서 왕족과 귀족 출신에서 주교가 나오고 평민 출신 사제는 하급 성직자에 머무르던 서양 역사와 다르지 않다.


사두가이파는 부활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도행전 4,2; 23,8) 사람이 죽으면 영혼도 육신과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부활 신앙은 오늘의 이란 지역에서 불을 숭배했던 조로아스터교에서 페르샤 왕국이 번성할 때 유다교에 수입되었다. 부활 신앙은 유다교의 핵심 교리도 아니었지만 유다교의 모든 학파가 다 믿은 것도 아니었다. 당시 유다교의 세 철학 학파중 하나인 사두가이파가 루카복음에서 유일하게 단독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다. 루카는 마르코 12,19를 참조했다.


28절에서 모세가 정한 법은 신명기 25,5-10을 가리킨다. 28절은 신명기 25,5와 창세기 38,8이 뒤섞여 인용된 것이다. 그 법의 원래 의도는 죽은 남자의 재산을 종족 재산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며 과부에게 사회적 안정을 배려하는 것이다.(Wolter, 656) 창세기 38,8-10과 룻기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약성서 시대에도 이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Kremer, 197) Bovon은 이 관행이 있다고 가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Bovon, III/4, 112) 29-32절에서 일곱 명의 형제는 묵시록에 근거한다거나 일곱 마카베오 형제(마카베오하 7장) 이야기를 의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논리를 탄탄히 하기 위해 문학적으로 숫자를 늘린 것 같다. 본문에서 여섯 형제는 아직 아무도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전제되었다. 


그 법을 이해하려면 당시 이스라엘 사회를 좀 아는 것이 좋겠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족이 아주 중요했다. 대가족이었고 함께 살았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다. 남자 의견이 여성보다 우선시되었다. 자손이 중요했다. 모세의 법은 과부의 안전보다 남자 후손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예수 시대에 차차 일부일처제가 자리 잡게 되었다. 28절에서 인용된 모세의 법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모세의 법에 남성중심주의가 있던 것을 현대의 독자들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 뮤지컬 ‘7인의 신부’의 한 장면


아직도 교회와 성당에서 남성중심주의가 심하다. 남성중심주의에 사로잡힌 목사와 신부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남성 신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남성의 관점에서 보고 생각하는 하느님 모습이 여전히 마치 유일한 진리처럼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교, 정말 큰일이다. 그리스도교는 남성중심주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목사와 신부들은 남성중심주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남성중심주의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는 수녀들과 여성 신도들도 어서 정신 차려야 한다. 


33절 설명은 부활 이후에 죽음 이전의 인간관계가 원래대로 다시 회복된다는 민간 신앙을 전제하고 있다. 많은 바리사이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Kremer, 197) 이런 어설픈 이해를 단순히 순수한 환상(Luz, Das Evangelium nach Matthaeus III, 264)이라고 여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이 부활을 제대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한 탓이 크다. 예수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와 다르다. 부활 이후에도 결혼과 자손 번식을 믿었던 바리사이와도 예수는 다르다.


34-38에서 예수의 답변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34-36절은 사두가이 질문을 반박refutatio, 37-38은 예수의 설명을 근거probatio 짓는다. 논쟁argumentatio을 진행하는 두 순서를 따르고 있다. 고대 유다교에서 대화와 논쟁에 유행하던 방식이다.(Bovon, III/4, 105) 34절에서 예수는 부활 이후 삶이 죽음 이전의 삶을 연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바오로도 그렇게 설명한다.(고린토전서 15,12)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가는gamein은 결혼식이 아니라 성관계를 가리킨다.(루카 14,20; 17,27; 디모테오전서 4,3) 36절에서 부활 후에 왜 성관계가 계속되지 않는지 설명하고 있다. 


부활 후에 자손 번식이 더 이상 없다. 예수가 결혼과 성관계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얕잡아보는 것이 아니다. 독신생활이 부활에 속할 만큼 가치 있다는 말도 아니다. 가톨릭의 사제독신제가 마치 지상에서 천사 같은 삶과 같을 만큼 아름다고 과장할 필요는 없다. 사제독신제와 아무 관계없는 구절이다. 부활 전과 후 삶이 같지 않다는 뜻이다. 천사는 하느님의 아들로 표현되었다.(창세기 6,4; 욥기 1,6; 2,1)


영혼 불멸 때문이 아니라 부활 덕분에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등 선조들이 이미 부활했다는 생각은 여러 곳에 있다.(4마카베오16,25; 13,17; 18,23) 루카 16,22 부분은 아브라함의 부활을 전제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이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모세도 그렇게 믿었다. 유다교에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졌다.(Kremer, 197)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다고 예수는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39절에서 율법학자들이 부활에 대한 예수의 설명에 찬성하고 있다. 부활 신앙에 대해 유다 유다교 여러 학파들 사이에 의견이 다른 것을 암시한다. 사두가이는 부활 자체를 믿지 않았다. 바리사이는 부활 이후 결혼, 성관계, 자손 번식이 계속 된다고 믿었다. 예수는 사두가이와 아주 다르고 바리사이와도 조금 다르다. 예수는 사두가이와 다르게 부활을 믿었다. 바리사이처럼 예수도 부활을 믿었지만, 바리사이와 다르게 부활 이후 결혼, 성관계, 자손 번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38절에서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다. 고맙고 멋진 말이다. 지상에서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 이전에 이미 부활을 살고 느끼는 사람이겠다. 살아 있어도 이미 부활한 사람이라니, 이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 말씀인가.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 사람이 있고, 살아 있지만 벌써 부활한 사람이 있다. 바오로도 예수처럼 사두가이에 대항하여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사도행전 23,6) 이라고 증언하였다. 부활에 대한 희망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희생자를 존중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사람만 부활을 희망할 수 있다. 악의 세력은 부활이 두렵기만 하다. 



사두가이파는 유다전쟁에서 몰살당한 뒤 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사두가이는 천사들과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지배층 사제들과 그 가족들 등 상류층에 속하던 사두가이파는 왜 부활도 받아들이기 거절했을까. 부활은 곧 심판을 뜻한다. 죄를 많이 범한 재벌이나 부자가 어떤 심판이든 심판을 받고 싶겠는가. 부자 그리스도인중 정말로 부활 신앙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나는 추측한다. 부활 신앙이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부활이 심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진짜로 부활을 믿는다면, 부자들이 지금처럼 살지는 못할 것이다.


부활 이후 삶은 현세와 다르다.(고린토전서 15, 35-55; 고린토후서 5,2) 부활 이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다.(요한 11,25) 부활은 현세와 연속되기도 하고 연속되지 않기도 한다. 현세의 삶의 내용과 이어진다. 그것이 심판이다. 현세의 삶의 형식과 달라진다. 부활 이후 결혼도 자손도 없이 천사처럼 된다. 지금 우리는 부활 이후를 상상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현세에서 마치 부활한 사람처럼 하느님 앞에 서서 살아야 한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처럼 살지 말고, 살아서도 이미 부활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부활이 있냐 없냐 뿐만 아니라 부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부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부활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우리가 부활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교회가 부활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부자와 권력자와 가까이 하는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지 않는 교회는 실제로 부활 신앙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부활을 믿는다고 아무리 입을 벌려 크게 소리친다 해도, 실제로 부활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고백에 그치지 않는다. 고백은 시작에 불과하다. 실천하지 않는 고백은 악의 편이다.


종교 권력을 장악했던 사두가이파는 역사 흐름에 관계없이 언제나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졌다. 종교 지배층이 개혁적 성향을 보인 적이 역사에서 한번이라도 있던가. 주교들과 신부들이 개혁적 성향을 가지고 역사의 희생자를 편들던 적이 있었던가. 가뭄에 콩이 날 것이다. 한국천주교회 역사도 마찬가지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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