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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SBS에게 들려주는 ‘유 아 낫 얼론’
  • 전순란
  • 등록 2017-05-05 11:54:20
  • 수정 2017-05-05 11: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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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4일 목요일, 맑음


어제 SBS가 ‘세월호와 문재인’이라는 특급뉴스로 고의적인 사고를 쳐서 마음이 몹시 상했다. 그 ‘실수’가 누구에 도움이 될까? SBS가 사과하고 기사를 내렸는데도 그게 사실이라고 우기고, 문후보가 언론 탄압한다고 역공하고, 그 언론사를 찾아가서 문 후보의 압력에 굴했다고 항의하는(자기는 ‘SBS 뉴스를 없애버리겠다’고, ‘종편방송 두 곳을 없애버리겠다’고 공갈했으면서) 홍준표 측의 사주처럼 보이지 않는가?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허위보도에 진실여부를 해명하기도 전에 투표가 닥치는 민주당으로서는 얼마나 황당할까? 어제 JTBC < 뉴스룸 > 엔딩음악의 ‘유 아 낫 얼론(言論)’이라던 자막이 조중동과 SBS를 향해 많은 말을 건넸다.


지방신문까지


인천공항의 ‘사전선거’

▲ (사진출처=경향신문)


새벽 5시 30분에 도메니카는 벌써 휴천면 투표소에 갔다, 민주당 참관인으로 자리를 지키려. 보스코는 지난 대선에서 문후보가 도둑맞았을 투표를 어떻게 지켜낼까 궁리하다 선거감시 전문가들에게 이리저리 전화하고서 ‘투표참관인 숙지사항’이라는 자료집을 만들어 오후 당번인 아내를 단단히 교육시킨다. 그냥 두면 구두시험도 보고 복습도 시킬 태세다, 누가 교수님 아니랄까.


11시에 이른 점심을 먹고 ‘걱정 많은 어르신’ 남편을 모시고 면사무소엘 갔다. 도미니카가 퀭해진 눈으로 자리를 지키다 반색을 하며 일어난다. 농사와 기도로 하루를 보내는 여인이 이렇게 정치현장에 나와 앉아있으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참관인 석에 앉으러 오기 전에 우국지사 남편에게서 전투현장에 파견되는 유격훈련을 빡세게 받은 터라서 면사무소 이층의 ‘사전투표장’은 의외로 평화로워보였다. 보스코는 사전투표를 하고 도메니카가 돌아가는 차편에 휴천재로 돌아갔다. 얼굴 익은 면사무소 직원들, 다른 당 참관인 아줌마랑 싸온 음식을 나눠먹고, 참관인으로 나온 사연도 주고받고, 한가한 시간에 원 없이 책을 읽었다.




‘일거리 있으니 신청해 보라’는 지인의 권유에 말하자만 ‘알바’ 삼아 나왔다는 아줌마는 “어쩌다 그 당이 되었나요?”라는 내 물음(나도 당원은 아니고 그냥 ‘문빠’다)에 자긴 당원이 아니라면서 “내가 뽑을 사람네 참관인이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한다. 속이야기를 좀 나누는 처지가 되어 “그럼, 누굴 찍을 텐데요?”라고 귓속말로 묻자 ‘엄지척’을 해 보인다. 자유당 아저씨는 두 여자 곁에서 몸살을 하다가 “나 돈 좀 벌어올 테니 자리 좀 지켜주소”라며 나간다. 어딜 가냐니까 100원짜리 고스톱판이라면서 돈 따면 아이스크림 사오겠단다.


그러니까 싸우는 건 후보들이고, ‘어대문’ 내지 ‘투대문’ 판에서 2등을 둘이서 겨루는 판세여선지 눈을 부릅뜨고 표를 지키거나 투표함 바꿔칠까 걱정할 분위기도 아니어서 느티나무 다음 주 숙제 「두 도시 이야기」(참 재미없는 책이다!)를 읽다 말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빠, 나도 찍을래



이층까지 올라오느라 숨이 턱에 차는 할메한테 물 한잔 갖다드렸는데, 손도장을 찍는데 지문이 안 나온다고 직원이 둘둘거린다. 글을 모르고, 걷기도 힘들고, 손까지 저렇게 떠니 저 할메가 찍을 2번은 무효표 되기 십상이리라(함양에서 늘 찍어온 자리 1번에 찍으면 안전할 텐데). 그 할메가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떠나자 먼저 와서 앉아있던 다른 할메가 한 마디. “참 별나다. 어끄저께도 깔딱꼬개 올라가 고사리 꺾어다 삶아 널더니만 요것 겨우 올라오는데 원 난리가 아니네, 참!” 내가 “어린양을 좀 하고 싶으셨을 거예요”라고 참견을 했다. 우리 동네에서도 논밭 일로 ‘꺼떡없던’ 할메들이 자식들 특히 큰아들이 찾아오면 유난히 엄살을 부려 이웃 아짐들의 지청구를 듣곤 한다. 어려서도 그렇지만 젊으나 늙으나 여자의 투정과 엄살은 사랑받고 싶다는 신호이리라. 


휴천면 유권자가 1620명. 오늘 관내 사람이 140명, 관외 사람이 45명 투표해서 지난 총선 200명을 하루에 거의 채웠다는 통계. 선관위가 지정한 차량에 투표함을 싣고 함양읍 선관위 보관소까지 동행하고, CCTV 작동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우체국에서 관외 투표자의 봉투를 수거해 갔고, 해당지역으로 보낸다는데 배달과정에서 무슨 바꿔치기라도 일어나지 않나 찝찝한 마음보다 선관위도 우체국도 전자개표도 못 믿게 된 우리 정치가 더 안타깝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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