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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웅배] ‘대통령 취임선서’ 그리고 반성문
  • 김웅배
  • 등록 2017-03-17 14:51:18
  • 수정 2017-03-17 16: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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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권좌에서 내려와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지난 4년간, 최순실과 한 몸을 이룬 그의 엽기적 행적은 이미 대부분 알려졌고 그 동안 부풀려져 왔던 박근혜 신화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기본적 소양과 상식, 소통의 부재는 따로 번역기가 등장할 만큼 온 국민을 어이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상징성에 너무나 부합하는 얄궂은 이미지까지 덮어쓰게 되었다. 그 주위에 딸랑거리며 모인 ‘십상시’들이 대통령에게 ‘투명한복’을 입혀 놓고 그의 허영심을 이용해 날개 없는 추락을 열심히 도왔기 때문이다. 


▲ Vilhelm Pedersen - The Emperor`s New Clothes (벌거벗은 임금님)


저 소크라테스의 케케묵은 명언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질이 부족한 군주라는 사실을 빤히 아는데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굽신거린 신하들의 행태는 호해를 농락한 환관 조고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십상시들은 혼군의 심리 경호에 몰두하고 돌아서서는 두 손을 놓아버린 행태를 계속했다. 


아무도 감히 진언을 드릴 수 없는 ‘반신반인’의 존재로 만들어 놓고 호가호위하는 무리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청와대는 수수깡으로 만든 엉성한 모형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 허망한 집을 압수수색도 한번 못하고 농단의 흔적을 지우려는 무리들을 방관하고 있는 이 나라의 사헌부와 포도청은 뱀같이 숨어서 살아날 기회만 엿보고 있다.    


권력을 탐하는 비열하고 영악한 무리들의 추임새만 없었다면, 만약 전직 대통령이란 자가 자신의 부정비리 사실과 맞바꾼 대선 개입만 없었어도 그는 이렇게 추하게 물러나는 모양만큼은 면했을지 모른다. 


언감생심 자신의 올림머리 위에 올려놓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면류관은 4년 내내 그의 머리를 짓눌렀다. 오로지 아비의 후광으로만 정치 일선에 나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국민의 어리석은 판단은 마침내 엄청난 사회 비용을 치루고 그대로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여하튼 그는 자신을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든 ‘국민’들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 범부들의 일상사에서나 어떤 작은 단체에서 물러날 때에도 자신을 반성하고 아쉬움을 표한다. 또 남은 자들을 축복하고 남은 자들은 그를 위해 아쉬움의 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몇 달간 청와대와 대척점에 있던 헌재의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서 퇴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흔히 얘기하듯이, 큰 과오 없이 무사히 소임을 다할 수 있었다는 점,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헌법재판관이라는 자리는 부족한 저에게 참으로 막중하고 무거웠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그 자리가 실은 폭풍우 치는 바다의 한가운데였습니다. (…)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통치구조의 위기상황과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 한비자)는 옛 중국의 고전 한 소절이 주는 지혜는 오늘도 유효할 것입니다. (…) 그 동안 혹시라도 저로 인하여 상처를 받으시거나 서운한 일이 있었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길 빕니다. 헌법재판소가 늘 국민의 행복을 실현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 큰 역할을 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늘 함께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드높이면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도 잃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4년 전 대통령 취임식 날, 국민 앞에서 다음의 선서문을 낭독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파면 당하던 날 삼성동 자신의 집골목에서 이렇게 ‘반성문’을 낭독해야 옳았다.  


▲ 박근혜 씨는 탄핵 심판 인용 후, 12일 삼성동에 있는 개인 집으로 복귀했다. (사진출처=YTN뉴스 갈무리)


“나는 ‘세월호 사고’, ‘메르스 사태’ 등을 통해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헌법을 준수하지 않았고 국가 보위는 나의 관심 밖이었으므로 나의 절친 ‘최순실’에게 맡기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 노력보다는 ‘개성공단 폐쇄’를 통해 북한과 적대적으로 공생했으며 국민의 자유는 나를 지지하는 ‘친박단체’에게만 무한히 허용하고 국가의 복리는 성남시라는 기초 단체만도 못하게 낮추었고 나를 반대하는 자들의 ‘블랙리스트’와 ‘국정역사교과서’를 만들어 민족문화의 창달을 억눌렀고 나에겐 좀 무리한 ‘대통령이라는 과한 직책’을 즐겁게 향유하였으며 ‘리프팅시술’을 통해 얼굴을 잘 가꾸어 잦은 외유를 통해 ‘최순실’이 만들어 준 한복만을 오로지 세계만방에 알린 ‘외교적 성과’ 외에는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불성실하게 수행하였음을 국민 앞에 자백하며 엄숙히 반성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위상과 국격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도 모자라 수없는 거짓말로 자신의 사사로운 인격조차도 지키지 못했다. 


이런 막장의 현실을 직시하고 파면당한 대통령에게 반성을 하시라고 읍소를 해도 부족할 판에, 그의 ‘십상시’들은 또 다시 그를 벌거벗게 만들어 허깨비 군주로 세워 놓고, 자신들의 개차반 정치 인생을 구차하게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고 하고 있다. 태극기를 몸에 두른다고 마법의 망토처럼 말갛게 투명해 보이지 않는다. 수구 부패 기득권층에 빌붙어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집단이 태극기를 흔든다고 별안간에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변신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인문학적 자기 성찰이 전혀 없는 이 한 줌의 세력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세상에 구현되기 바라는 ‘정의’가 돋보이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 ‘필요악’으로 치부해 버리면 마음이 편할까? 아니면 어느 동네에나 한 두 명 쯤 존재하는 패악질을 일삼는 ‘망나니’로 아예 치지도외하는 것이 나을까? 나라를 한번 헤갈을 쳐놓고 또 망치려는 이자들을 도대체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도 우리가 함께 가야하는 사회의 구성원이니 그저 그들에게 ‘지록위마’를 시전한 환관 조고의 행적을 다시 한 번 묵상해보기를 권고할 따름이다.


적어도 앞으로는 이러한 대통령 ‘반성문’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필진정보]
김웅배 : 서양화를 전공하고, 199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지금까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에디슨 한인 가톨릭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4 복음서를 컬러만화로 만들고 있다. 만화는 '미주가톨릭 다이제스트'에 연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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