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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앞에 침묵하는 신···‘배교’ 할 것인가
  • 최진
  • 등록 2017-02-17 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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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인간의 고통에 침묵하는 신은 종교인들의 오랜 딜레마다. 신학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었지만,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해결되리라고 낙관 할 수도 없다. 이 문제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없기 때문이다.


신의 침묵은 무신론을 낳기도 했다. 고민을 외면하다가 기복 차원의 문화로 전락하기도 했다. “세상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신”으로만 하느님을 정리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어쨌든, 가시적이고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인간에게 신의 침묵은 달갑지 않다.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1966년 ‘침묵’이란 소설로 이 달갑지 않은 주제를 다뤘다. 가톨릭신자인 그는 17세기 일본 에도막부가 그리스도교를 탄압했던 역사를 소재로 신의 침묵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의 응답이 절실했을 박해 시대로 독자를 내몰았다. 그리고 소설은 이를 통해 신의 침묵을 다룬 20세기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훌륭한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혹평을 받는 경우가 있다. 책의 감동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왜곡과 잘못된 편집 등으로 오히려 그 명성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근 30년간 영화제작을 고민했다.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각색만 15년이란 세월을 쏟아 부었다. 


결국 그는 신의 침묵을 다룬 20세기 최고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순교 신심의 향기가 진하게 맴돌고 있는 한국 땅에 그 상륙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 ‘사일런스’다. 


▲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교회를 버릴 것인가, 죽음을 택할 것인가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는 17세기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신부다. 그는 선교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선불교로 개종한 뒤 자신이 몸담았던 가톨릭을 서책 등을 통해 맹렬히 비판했다. 예수회 신부였던 그가 배교 후 교회에 칼을 겨눈 상황은 당시 서방교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페레이라 신부를 존경해오던 로드리게스 신부는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스승에게 덧씌워진 오명을 벗겨내고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 선교를 자청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일본에서 싸워야 했던 것은 스스로가 쌓아왔던 신앙의 완고함이었다. 


헌신적인 목자를 꿈꾸며 선교에 나선 신부는 죽음 앞에서 예비자 신세였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했지만, 그 영광은 죽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영광이 신자들의 죽음 위에 세워져야 하는 상황 앞에서 그는 사목자로서 오열한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말한다. “배교 하세요”


▲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신의 침묵’을 한번이라도 고민했다면


“나는 배교자가 꿈이다”라고 말하는 신앙인은 없다. 그러나 “나는 순교자가 꿈이다”라고 말하는 신앙인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자”라는 그럴듯한 표현이 나온다. 내가 빠진 우리, 죽음이 빠진 신앙이다.


신앙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 응어리는 신앙인마다 달고 다니는 혹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와 일치하겠노라고 고백하면서도 죽음 앞에서는 머뭇거리게 된다. 신앙의 목표와 인간의 현실은 늘 거리가 멀다. 


그러나 영화 <사일런스>는 목표와 현실이라는 가치의 우선순위까지도 고민한다. ‘신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써의 오늘’이 아니라, ‘참된 오늘을 살기위해 끝없이 다듬고 수정해야 할 신앙의 목표’를 생각하게 만든다. 


가장 절실한 순간에 침묵하는 신, 절대적인 믿음에 대한 진중한 물음은 눅눅하고 무거운 한 여름의 공기처럼 관객의 가슴에 남는다. 배우들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영화의 주제를 살리는데 헌신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방해받지 않고 영화의 주제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런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최고의 배우들이다.

 

좋은 책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했다. 하느님의 침묵을 한번이라도 진중하게 고민했을 신자들은 <사일런스>가 풀어내는 목소리가 뜬금없이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친숙하지만 무거웠던, 따뜻했지만 외로웠던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품었던 신앙인들에게 영화 <사일런스>는 함께 고민을 나눌 친구 같은 영화다.


▲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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