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잡초들은 ‘풀독’으로 복수한다
  • 전순란
  • 등록 2016-07-29 10:50:09

기사수정


2016년 7월 28일 목요일, 맑음


약을 먹었더니 눈이 반은 감기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온 몸에 솟아나는 붉은 점들은 벌레에 물렸거나 ‘폴독’이라니 잡초들이 내게 복수를 야무지게 한다. 어제 오후에 중복 더위에 옷을 껴입을 대로 껴입고 텃밭에 자란 바랭이를 실컷 캐다 올라왔더니만 뿌리채 뽑혀 죽은 그 잡초들이 내게 복수를 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 보스코가 나를 보고 쯔쯔가무시병 같다며 보건소에 빨리 가보란다. 아내가 아프다면 “병원에 가봐!”라거나 “약 먹지 그래”라는 게 남편들이 보이는 친절 전부다. 보스코가 아프면 내가 차로 실어가고 접수절차를 다 거치고 따라 들어가서 그의 병세를 의사한테 일러주고 약국에서 약을 사오고 시간마다 약봉지를 내미는데...



한남보건소에 가서 “선생님, 우리 남편이 쯔쯔가무시병이라고 빨리 가보래서 왔어요” 했더니 “에이, 선생님은 아녜요. 그 병 걸린 사람은 걸어 들어오는 것부터 달라요” “어떻게요?” “허리가 90도로 꺾여 져서 ‘내 평생 그리 나쁜 짓은 한일이 없는데, 어째 이리 죽도록 아프요?’ ‘아 낳는 것보담 더 아프요. 나 좀 살려주소.’ 이렇게 하고들 들어온단 말이오”


한남보건소장은 함양일대 제일의 명의다. 그래서 동네 아짐들은 물리치료 받을 일 아니면 모두 보건소로 간다. 무엇보다 약을 배부르게 준다. 게다가 약값은 사흘치든 열흘치든 단돈 900원! 나도 엿새치 약을 받았는데 “이번에 먹다 남으면 담에 같은 증세 때 잡수세요”란다. 다음 병까지 염려 해주는 자상함이라니!


남수단에서 선교하다 전쟁이 나서 휴가 겸 일시 귀국하신 이해동 신부님이 아침 일찍 보스코에게 전화를 하셨다. 통화가 길어지기에 나는 그냥 보건소로 갔는데 내용을 물으니 남수단의 정치상황과 그분이 겪은 경험을 들려주시더란다. 


원 신부님을 만나 병문한 사진들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시고, 한국말 노래를 들려달라는 원 신부님 당부에 노래를 부르다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를 원 신부님이 선창하시고 도중에 눈물을 흘리시던 동영상도 보내주셨다. 한국의 추억이 그리도 깊으시다는 표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 텃밭에서 기계소리가 나기에 내려다보니 보스코가 드뎌 예초기를 돌린다. 얼굴이 마주치면 뭔 말이 나올 것 같아 그냥 올라왔다. 한 시간 정도 밭일을 하고 얼굴이 벌개져 올라왔다. 어서 목욕을 하라 이르고 나는 부지런히 저녁준비를 했다. 무슨 말을 해도 역시 부부가 함께 할 일과 각자 할 일이 따로다. 내가 며칠째 뿌리째 풀을 뽑아 그 흙을 뽑아낸 잡초로 덮어 놓으면 한동안 깨끗한데 예초기로 자르면 일이야 빠르지만 한주일 안에 자라버린다. 되레 웃자라 올라 금세 다시 깎아야한다.



진이가 왔다. ‘딸은 세간 밑천’이란 말대로다. 내일부터 개최하는 함양산삼축제에 송지농원 블루베리 판매원으로, 아니 얼굴마담으로 고용됐나보다. 작년에도 진이가 와서 축제동안 가게를 돌봤는데 얼마나 잘했는지 주위 사람들이 진이엄마를 부러워했다.


보건소 나간 길에 가서 빗자루를 두개 사왔다. 하나는 우리 것, 하나는 공소 것. 이곳에서는 길을 쓰는 사람이 없다. 겨울에 눈이나 와야 눈을 쓸어 모으고 눈사람도 만드는데 여기는 워낙 눈이 적어, 온다 해도, 순애씨 표현을 빌리면, ‘씨알꼽데기만큼’이나 내리고 쓸 틈도 없이 녹아버린다. 동네길은 4차선은 마다하고 좁은 골목길이라 누가 자기 집 앞을 쓴다는 생각도 없다. 능소화 떨어진 길을 혼자 쓸면서, 지는 꽃 치우지 않고 두고 보며 돋는 풀 지심매지 않고 그냥 두고 볼 수 있어야 진정 ‘문정여자’가 될 것 같다.


교황님이 폴란드 크라쿠프 세계청년 대회에 참석하고 계시다는데 빵고신부도 한국청소년팀 일부를 인솔하고 거기 가 있다. 그리스도교 세계에 보복하느라 이곳저곳이 이슬람의 테러로 붉게 물드는 나날이어서 부디 별일 없기를 기도했다. 자정 넘어 본 영상에 젊은이들 앞에서 미사를 집전하다 ‘꽈당’ 넘어지신 사진이 나오는데 ‘꽝’하는 폭음이 아니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천재 앞에 핀 해바라기꽃을 교황님께 드리고 싶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