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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삶의 안쓰러운 민낯, 불안과 고독
  • 김혜경
  • 등록 2016-01-06 10:37:27
  • 수정 2016-01-12 11: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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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인 / 나쓰메 소세키 지음 / 문학과 지성사 / 390쪽


한 해가 가고 다시 한 해가 시작되고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도 하고 뭔가 새로운 마음을 먹기도 해야 할, 그런 때이다. 나는 이 무렵이면 나와 주변을 들여다보다 오히려 안으로 안으로 까마득히 가라앉는 그런 느낌이 든다. 툭하면 길을 잃은 듯 아뜩해져서는 멍하니 앉아 있곤 한다. 찬 겨울답게 쨍하니 하늘이라도 맑으면 좀 개운해지련만, 하루가 멀다고 뒤덮이는 미세먼지 때문인가 내 안도 창밖도 온통 뿌옇다.


자이언티의 노래마냥 별사탕이나 라면땅이라도 먹으며 모두들 아프지나 말았으면 싶은 이 겨울 한복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행인(行人)>으로 쓸쓸하기 그지없는 삶의 본질을 마주한다. 일본에서 ‘국민작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明治) 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행인>에서 화자인 나가노 지로(長野二郞)와 그의 형 이치로(一郞) 그리고 형수 오나오(お直), 이 세 사람의 미묘한 심리와 감정을 아주 섬세하고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들 가운데 나의 눈길을 끈 인물은 지로의 형, 이치로다.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늘 서재에 틀어박혀 학문과 연구를 유일한 낙으로 사는 장남인데, 훌륭한 학자에다 잘나가는 교수다. 가부장적 집안에서 오냐오냐하며 기대주로 자란 탓에, 순수하지만 이기적이고 까다로워서 함께하기엔 좀 불편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자신, 자기 생각에 푹 빠져 사는 인물이다. 지나치게 자신에게 몰입해 있는 탓에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아내와 어린 딸과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서툴기 짝이 없다. 아빠로서 귀여운 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항상 엉거주춤한다. 


남편과 성격이 닮은 아내 오나오는, 히스테릭한 이치로 보다는 성격 좋고 다정다감한 시동생 지로가 더 편하고 말도 잘 통하는 느낌이다. 이런 낌새를 알아챈 이치로는 자신이 아내를 어찌 대하는지 생각은 않고, 자기에게는 냉랭하면서 지로와는 잘 지내는 아내를 의심한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말이다. 


아니, 사랑하니까 오히려 믿지 못한다는 게 맞겠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뻔히 알지만, 상대가 내 생각, 내 마음과 같기를 바란다. 상대를 훤히 알고도 싶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렇게 모두 알 수는 없다. 나와 같기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 말도 안 된다. 


사실 나 자신 조차도 내 마음, 내 생각을 제대로 모른다. 내 안에 너무도 많은 내가 있는 걸 수시로 느낀다. 세상에 누구도 ‘너’를 혹은 ‘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이치로도 그걸 안다. 그러니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다. 믿으려야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치로는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자기 생각과 빈틈없이 딱 맞아 떨어져야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그는 괴롭다. 불안과 고독에 시달린다. 이치로도 세상 일이 자기 마음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얼마나 가당찮은 생각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가만있을 수가 없다. 가만있어지질 않는다. 그게 문제다. 


급기야 아내의 정조를 확인하려고 동생더러 형수와 단둘이 여행을 다녀와 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형으로서 그런 부탁을 한다는 게 자존심 상하고 치졸하다는 걸 안다. 상식 밖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동생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밖에 없다. 무슨 일에나 이런 식이니 언제나 좌불안석이다. 거듭된 형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여행을 다녀온 지로는 형수에게 의심할 구석이 전혀 없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치로는 믿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부모와 형제, 가족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그는 더욱 고립되기만 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정신적으로 이상해질 정도다. 도저히 제정신일 수가 없다. 


“형님은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든지, 되돌아보고 음미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식사 중에 1분마다 한 번 씩 전화벨이 울리는 것처럼, 매순간 그 흐름이 뚝뚝 끊깁니다. 그런데 중단시키는 것도, 중단되는 것도 모두 형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두 가지 마음이 서로 비난하고 비난당하느라 잠시도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p.342)


이쯤 되면 이치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슨 일이든 자기 생각대로 되지를 않는다. 실제로 우리네 삶은 의외이고 뜻밖인 경우 투성이다. 이런 걸 사람의 머리로 일일이 따져본다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나 마음상태일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치로도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자기 마음을 모르겠다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걸 죄다 알고 있어서, 그래서 이치로는 더욱 불안하고 초조하다. 한시도 가만있을 수가 없다.


“…차분히 누워 있을 수 없으니 일어난다. 일어나면, 그저 일어나 있을 수 없어 걷는다. 걸으면, 그저 걷고만 있을 수 없으니 달린다. 이미 달려 나간 이상, 어디서도 멈출 수 없다. 멈출 수 없기만 하다면 괜찮겠는데, 시시각각 속력을 늘려가야 한다. 그 극단을 상상하면 두렵다. 식은땀이 날 만큼 두렵다.”(p.326-327)


이치로는 수만 수천 조각으로 흩어져 있는 삶의 퍼즐을 질서정연하게 맞추고 싶다. 엉킨 실타래를 모조리 풀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그런 일들이 무의미해진다. 퍼즐 맞추기나 실타래 풀기 따위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 그런데, 멈추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멈춰지질 않는다.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또 이리저리 퍼즐조각을 뒤지고 실마리를 찾느라 끊임없이 고심한다. 그러다 멈추려 한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다 멈춰지지가 않는다. 


맞춰야 할 퍼즐은 산처럼 쌓여 있고 세상 가득 뒤엉킨 실타래 뭉치 때문에 조바심 나고 불안해서 골치가 너무 아프다. 그런 내면을 누구와 나누지도 못한다.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겉보기엔 그럴듯한 신사 같지만, 실제로는 집 없는 거지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헤맨단다. 이런 자신이 싫어서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도 않아서 하루 종일 극심한 불안에 쫓겨 한심할 정도로 허덕인다며 고백한다.  


이렇게 생각에 한 번 빠져들면 끝을 모르고 정신없이 극한을 향해 치닫는 이치로. 자기 자신 안으로만 한없이 파고드는 병적인 에고이스트. 그를 통해 인간 존재의 민낯인 불안과 고독의 극한을 만난다. 


인간이란, 또 삶이란, 본질적으로는 ‘함께’라는 게 불가능해서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아니 때로는 내가 나 자신 스스로에게 조차 낯선, 그저 지나가는 사람, 행인(行人)에 불과할 뿐인가. 나쓰메 소세키도 그렇게 느껴 제목을 ‘행인’이라 했을까. 그래서 이치로의 말대로 인간은 결국 죽음을 택하든지 아니면 미치광이라도 되든지 그도 아니면 종교 같은 데 의지하는 거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걸까.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동시에 나아가지 않을 수도 없는, 그 발끝저리는 머뭇거림의 극점. 그걸 오롯이 혼자 감내하며 살아내야 하는 고독한 시간들. 삶이 가진 절대 절명의 이 숨 막히는 외로움을 어찌하면 좋은가.  


아뿔싸, 이 마당에도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을 거고 또 그리워할테지. 힘겨운 지난날처럼.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너른고을문학회원이며,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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