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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단식기도회
  • 장영식
  • 등록 2015-07-20 14:35:23
  • 수정 2015-07-20 14: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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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에 참석한 사제단과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은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 장영식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천주교부산교구 정의구현사제단 단식기도회가 7월17일(금) 오후 7시 30분, 부산시청 앞 고공농성 현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갈무리했다. 이날 미사에는 20여 명의 천주교부산교구 정의구현사제단과 300여 명의 수도자와 평신도, 생탁과 택시노동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김인한 신부는 “사제단 단식기도회를 갈무리하면서 시청 앞 생탁노동자와 택시노동자의 고공농성 현장에서 꼭 미사를 드리고 싶었다”며 “사제단의 단식기도회 기간 동안 사제단을 지지하고 연대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사제단을 대표해서 김상효 신부는 “숨지 마십시오”라는 주제 강론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숨기는 이들과 노동자들의 삶을 핍박하는 이들을 향해 장막 뒤에 숨지 말고 광장으로 나올 것을 촉구했다. 김상효 신부는 모두가 숨고, 모든 것을 숨기는 골방에서 음습한 창녀의 기운이 덮쳐 나와 민주주의를 썩게 만드는 참담한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시작되고 햇빛 아래에서 완성되었다”고 강조했다.


이균태 신부는 고공농성 노동자들과 전화 통화를 통해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부를 물었으며 송복남, 심정보 씨는 “사제단의 단식기도회와 고공농성 현장에서 시국미사를 봉헌하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꼭 승리해서 땅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미사에 함께 한 수도자들과 시민들은 고공농성장을 향해 손을 흔들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고,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며 연대의 함성으로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이번 미사는 사제단과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이 자본으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비참하고 참담한 현실을 올곧게 인식하고, 고공농성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함께 살자’고 절규하는 노동자들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은 지금 바로 이곳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적 기쁨을 실현하겠다는 다짐의 시간이었다.



* * *


아래는 김상효 신부 강론이다.



-독서 : 이사야서 1장 21-31

<충실하던 도성이 어쩌다 창녀가 되었는가>

-알렐루야 :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복음 : 마태오 10,24-31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지 마십시오


사제들이 단식을 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기원하는 단식기도회였습니다.


5월 18일 진도 팽목항에서 시작된 사제들의 단식은 청주교구 사제단, 안동교구 사제단, 수원교구 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단, 인천교구 사제단의 단식으로 이어졌고, 지난 7월 13일부터 오늘인 7월 17일까지 부산교구 사제단의 단식기도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부산교구 사제단의 단식기도가 끝나는 날입니다.


사제들이 단식을 하였습니다.

더 약해지기 위하여 단식을 했습니다.

우리의 약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단식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거대한 벽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약함을 드러냈듯이, 광고탑 위에 올라간 생탁과 택시 노동자 두 분이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처지를 세상에 드러냈듯이 사제들은 스스로 약해지기 위하여 단식을 하였습니다.


▲ 고공농성장의 택시와 생탁 두 노동자들은 사제단과 수도자 그리고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꼭 승리해서 땅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 장영식


그저 눈물을 흘리며, 아니 눈물도 미처 흘리지 못한 채 진실을 알게 해 달라고, 매달리고 애원하고 주저앉아 땅을 치는 세월호 유가족들. 그들은 약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방어할 아무런 조직도 힘도 없이 그저 광고탑에 올라앉은 저 노동자 두 분도 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입니다.


굶는 것 외에 외침을 말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사제들 역시도 힘없는 사람들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하도 답답한 현실에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안 될 것 같아 이 약한 사람들을 만나러 오신 여러분들도 힘없는 사람들과 한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광장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허약함을 가려줄 아무것도 지니지 못했지만 우리는 광장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숨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자랑으로 여기며 함께 서로를 부둥켜안을 마지막 힘으로 여깁니다.

우리의 약함이 우리를 광장으로 불러내었습니다.

우리의 속살이 바위 앞의 계란처럼 허물어질지라도 밝은 빛 속에 머물기 위해

우리는 여기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러니 세월호의 당사자 여러분, 제발 숨지 마십시오.

청와대 앞 철문 뒤에 숨지 마십시오.

누더기 같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뒤에 숨지 마십시오.

관료 조직의 방어막 뒤에도 숨지 마십시오.

공권력의 완력 뒤에도 숨지 마십시오.

물대포로 무장한 차벽 뒤에도 숨지 마십시오.

언론의 무비판적 동조 뒤에도 숨지 마시고

세월이 지나면 세월호가 잊혀질 것이라는 기대 뒤에도 숨지 마십시오.


왜 숨어 있습니까?


세월호의 비극이 엄청난 것이지만 우리가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광장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그리 어렵습니까?

아이들의 죽음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정치적 사안입니까?

아이들의 죽음이 안전망 없는 대한민국에 울리는 경종이 되어 우리를 깨우쳐 주는 의미가 되는 것이 그리도 못마땅합니까?


이 일을 이렇게도 어렵게 만든 것은 세월호의 당사자 여러분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이끌고 광장에 나와 있습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숨게 만드는지 무엇이 여러분을 두렵게 만드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광장에 나와 세상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생탁과 택시노조의 비참한 현실에 책임을 져야할 당사자 여러분, 제발 숨지 마십시오.

입맛에 맞는 노조를 선택하여 그 뒤에 숨지 마십시오.

노동자들의 취약한 지위를 엄폐물로 삼지 마십시오.

쌓아놓은 돈 뒤에도 숨지 마십시오.

어설픈 제도와 공권력 뒤에도 숨지 마십시오.


부디 광장으로 나오십시오.

처음부터 이 노동자들이 사용자 여러분에게서 뺏을 수 있는 것이란 없었습니다.

원래 이들에게 속한 것이었고 원래 이들이 누려야할 권리였습니다.

이들과 교섭하는 것이 하늘이 무너질 만큼 대단한 일입니까?

이들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 당신들을 무너뜨리고 당신들의 것을 빼앗아 올 수 있겠습니까?

부디 광장으로 나와 이들을 만나십시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도 숨지 맙시다.

일상 속에 숨어들지 맙시다. 오늘이 무사하니 내일도 안전할 것이라는 허망한 기대로 우리의 양심이 일상의 껍질로 차단되는 것을 두려워합시다.

먹고 사는 일이 우리에게 시급한 일이지만,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짓누르지만,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숨지 맙시다.


우리의 힘은 우리가 숨지 않았다는 사실에 존재합니다.

우리의 힘은 우리의 약함을 드러내고 약한 이들끼리 서로를 부둥켜안았다는 사실에 존재합니다.

아파할 일은 충분히 아파합시다. 분노할 일에는 마땅한 분노를 가집시다.

그리고 광장으로 나와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말합시다.


사제들이 단식을 하였습니다.


“충실하던 도성이 어쩌다 창녀가 되었는가?(이사야 1,21)”라는 이사야의 탄식을 공감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원래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시작되고 햇빛 아래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모두가 숨고, 모든 것을 숨기는 골방에서 음습한 창녀의 기운이 덮쳐 나와 민주주의를 썩게 만드는 현실에서 이사야의 탄식은 사제들의 탄식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좋아하는 그 참나무들 때문에 너희는 정녕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가 선택한 그 정원들 때문에 너희는 창피를 당하리라(이사야 1,29).” 예루살렘이 죄 속에서 자신을 숨길만한 대상으로 삼았던 그 모든 것들이 무참히 사라질 우상이었음을 선포하는 말입니다.


사제들이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덧붙이는 글

장영식 :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전국 밀양사진전 외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했고 사진집 «밀양아리랑»이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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