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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사제연수회 : 미래의 사제상 2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10-01 15:57:39
  • 수정 2015-10-02 02: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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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9월 16과 17일 마산교구 교육관에서 열린 마산교구 사제연수회에서 가톨릭프레스 김근수 편집장이 3회 강연한 내용을 6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사제와 평신도는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보다 사제는 예수를 제대로 따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사제와 예수의 관계뿐 아니라 사제와 하느님나라의 관계도 보아야 한다. 하느님나라 건설에 사제는 얼마나 애썼는가. 또한 하느님의 백성,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제를 보아야 한다. 사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금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가.


예수, 하느님나라, 가난한 사람들과 세 가지 관계에서 사제는 누구인가 물어야 한다. 세 질문 다음에야 비로소 평신도와 사제의 관계를 보는 것이다. 여기서 감히 성직자중심주의를 누가 감히 내세우겠는가.


우리 교회에 ex opere operato라는 원칙이 있다. 일단 집행된 성사는, 성사집행자인 사제의 윤리적 도덕적 품성에 관계없이, 유효하다는 뜻이다. 이 원칙은 하느님에서 비롯되는 성사의 고귀함을 강조하는 것이지 사제가 자기 수양을 게을리 해도 좋다는 뜻의 알리바이가 아니다. 


그런데 이 원칙을 잘못 알거나 해석하는 사제들이 적지 않다. 사제는 저절로 또 다른 예수라는(alter Christus) 뜻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제는 예수와 아주 다르거나 반대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흰 옷을 입은 사람은 더 조심해야 한다. 그 옷에 작은 흠집이 있어도 남의 눈에 금방 들킨다. 


사제는 희생자요 예언자다. 하느님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이다. 희생하지 않고 예언자가 아닌 사제도 그저 그렇고 그런 사제중의 하나로 살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런 사제는 아직 참다운 사제는 아니다. “예언이 사라진 빈자리에 성직주의가 자리잡는다”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했다. 



예수의 왕직, 예언직, 사제직은 사제뿐 아니라 세례 받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졌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 14) 그런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제나 평신도는 한국에 얼마나 될까. 그렇게 신자들에게 말하는 사제는 얼마나 될까. 


지금 한국교회가 닥친 문제는 무엇인가. 순교정신이 약화된 현상이 가장 아픈 현실 아닐까. “나는, 우리 천주교는 절대 박해받지 않는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널리 퍼져있다. ‘순교는 지난날의 일이고 남의 나라 일’이라는 생각이 사제들과 평신도에게 널리 퍼져 있다. 순교자 마케팅은 해도 순교할 생각을 하는 사제나 평신도는 별로 없다. 박해, 순교와 아무 관계없는 신앙과 교회 운영은 정말 큰 문제 아닌가. 


‘사제는 출세에 신경 쓰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가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제들이 돈과 권력의지에 사로잡혀 다투고 헤매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얼마 전 미국의 어느 잡지에 표제인물로 교황이 등장하였는데 그 제목이 심상치 않다. “교황이 바티칸을 바꿀 것인가, 바티칸이 교황을 바꿀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회개혁 노력이 교회 안에서 반대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천주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지하고 있는가 반대하고 있는가. 한국주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지하고 있는가 반대하고 있는가. 


세계 교회의 지형과 흐름이 크게 바뀌고 있다. 남미 신자의 인구비율이 전 세계 신자들의 40%를 넘어섰다. 남미에서 시작된 해방신학이 가톨릭신학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교회에서 유럽의 영향은 꾸준히 줄어들 것이다. 


교회와 신학의 정보가 교회 안에서 유통되는 구조도 크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사제가 강론에서 전달하는 소식만 신자들은 겨우 듣는 정도였다. 지금은 교통, 통신, 언론, 출판, 여행,  SNS 발달 등으로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신자들은 언론에서 교황 소식을 듣고 있다. 사제가 강론에서 교회 정보를 제대로 전하는지 신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해외교회와 교포교회 소식도 빠른 속도로 국내에 전해지고 있다. 어디 교포사목에서 어느 사제가 돈과 골프 문제로 추문을 일으키는지 금방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고 있다. 교포사목이 사제들의 세속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여기서 미사예물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 한국 신자들은 미사예물을 독일 신자나 미국 신자들보다 더 많이 내는 편이다. 한국 신자들보다 성당에 각종 헌금을 많이 내는 신자가 지구상 어디에 또 있는가. 반드시 고쳐야 한다. 가난한 신자들은 미사예물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왜 사제들은 신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가. 


은퇴 사제들도 공동생활하면 어떨까. 은퇴사제에게 들어가는 돈이 교회에 부담을 주고 있다.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한국에서 은퇴사제들의 빈곤율은 얼마나 되는가. 은퇴하지 않은 사제들도 지금부터 자신의 생활방식을 고쳐나가야 한다. 시골성당의 사제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안락한 생활을 예수, 베드로, 바오로 그 누가 하루라도 했던가. 


신학생들이 희생자요 예언자로 교육받고 있는가. 지금 사제들이 희생자요 예언자로 존재하고 있는가. 이런 관점에서 신학교 교육과 사제 재교육을 점검해야 하겠다. 성직자 중심주의는 얼른 고쳐야 한다. 돈과 권력에 대한 사제들의 태도를 살펴야 한다. 가난과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사제들의 태도를 검토해야 한다. 


신학생 때부터 가난이 무엇인지 망각해 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평신도가 빚과 대출 이자에 얼마나 가슴 조이며 사는지 사제들은 짐작이나 하는가. 단돈 오천 원이 얼마나 귀한지 사제들은 아는가. 사제 입에서 헌금 이야기가 어찌 그리 자연스레 나올 수 있는가. 평신도가 현금 자동인출기인가. 굶어죽었다는 사제 소식은 아직까지 없지만, 굶어 죽은 평신도는 역사에 무수히 많았다. 가난을 모르는 사제들, 가난하게 살지 않는 사제들이 한국 교회에 큰 문제 중 하나다. 


사제가 교회의 가르침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전달하는지만 신자들이 보는 것이 아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사제가 어떻게 대하는지 신자들은 더 주목하고 있다. 교회가 부자와 권력자들과 어떤 관계인지 사람들은 우선 보고 있는 것이다. 


인천교구 소유 국제성모병원 사건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과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고 있다. 최기산주교가 7일을 단식한 노동자를 만나주지 않았고 300명이 넘는 인천교구 사제들 중 아무도 단식하는 노동자를 면회하지 않는 일이다. 사제가 아닌 보통 인간으로서도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사제단의 집단 지성 수준이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잘못을 저지른 사제들도 나쁘지만, 그런 일을 보고도 침묵하는 사제들도 참 나쁘다. 그런 사제들이 하느님에 대해 하는 말을 사람들이 경청하겠는가. 그런 사제들이 사회 민주화에 대해 외치는 소리를 사람들이 이제 믿어주겠는가.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다. 사제생활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풍기도록 애써 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불의에 저항하고 가난하게 살고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사제의 삶. 그 얼마 멋진 삶인가. 그렇게 사는 사제의 삶은 정말 행복할 것이다. 


어제 오늘 강연을 요약하겠다. 예수의 제자교육의 주제는 제자들이 자기를 희생하고 권력 다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해방신학의 역사는 우리에게 교회 쇄신을 촉구하고 사제의 세속화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미래의 사제상은 불의에 저항하는 예언자적 사제를 요청한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 


미래의 사제는 가난한 사제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제여야 한다. 사제는 자신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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