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2024.02.22.) : 1베드 5,1-4; 마태 16,13-19
오늘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신 열두 명 가운데에서 베드로를 택하시어 수제자로 삼으시고, 그에게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그 계기와 이유는 베드로가 고백한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열두 명으로 채워지고 나서 예수님께서 이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기도 했고, 병든 이들이나 장애자들을 치유해 주시기도 했으며, 마귀 들린 이들을 만나시면 그 마귀를 내쫓아서 자유롭게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신 이들이 거의 대부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이었으므로, 베드로는 예언자 이사야가 일찍이 메시아에 대해 예언했던 바가 그분에게서 실현되고 있음을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을 무렵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그 무렵의 상황에 대해 알려줍니다. 기적 소문이 퍼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일부러 갈릴래아를 떠나 헤르몬 산 기슭 카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필리피를 향하여 며칠 간의 소풍을 떠나셨습니다. 그 길에서 예수님께서는 작정하신 듯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마태 16,13).
그러자 주변 경치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이 걷던 제자들이 느닷없이 던져진 스승의 물음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주섬주섬 대답을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엘리야라 하는 사람도 있으며,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디다”(마태 16,14). 이 대답은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만큼 출중한 능력과 신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소문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중의 심리를 이미 꿰뚫어 보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궁금하셨던 바는 그런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정작 알고 싶으셨던 것은 제자들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태 16,15) 하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스승에 대해 지닌 평판에 대해서는 중구난방으로 아무거나 되는 대로 대답을 주워섬기던 제자들이 이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베드로가 나서서 이렇게 대답해 드렸습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이 정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면서도 진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이 말씀의 뜻인 즉, 예수님의 올바른 신원 즉 참모습을 알아보는 일은 인간이 자기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종의 인식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물론 후대에도 예수님의 훌륭함을 알고 세례까지 받은 사람들은 부지기수(不知其數)로 많지만 참모습을 알아본 신앙인들은 적었습니다. 겉으로 따르기는 쉬워도 진심으로 믿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바오로의 경우를 보아도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라는 이름까지 새로 지어 주시며 당신의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이 반석(盤石)입니다. 그 위에 집을 지어도 될 정도로 아주 크고 넓은 바위를 말합니다. 베드로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은 세 가지 요소가 담겨 있는데, 그것은 첫째 그가 고백한 믿음 위에, 둘째 당신의 교회를, 셋째 베드로가 죽은 후에도 세세대대로 영원히 존속시키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으로 자처했으며, 자기자신도 고난 덕분에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 기대하였던 것입니다(1베드 5,1).
이렇게 하여 세워진 교회의 정통성은 법적인 측면과 본질적인 측면을 다 지니는데, 베드로가 인정한 후계자와 그 후계자들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법적인 정통성이라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믿으며 또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본질적인 정통성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후계자들로부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배워서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분을 알아보고 믿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를 받는 것은 필요 조건이지만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더 중요한 충분 조건입니다. 믿음으로만 교회가 세워질 수 있고, 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으며, 세상도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교회가 중요하고, 믿음은 더 중요합니다. 이 믿음과 교회가, 시대가 바뀌어도 하느님과 인류를 이어줄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이 믿음 위에 세워진 교회에 엄청난 축복까지 내려 주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이 말씀으로 믿음 위에 세워진 교회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일을 계승하는 전권을 위임 받았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거행하는 성사의 위임 근거입니다.
교우 여러분!
성사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성사적 실천도 하늘 나라의 열쇠입니다. 거룩한 일을 뜻하는 성사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하고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성사적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성사의 열쇠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행복을 여시고 기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행복과 기쁨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천부적인 권리이며, 이 행복과 기쁨이 우리 삶의 반석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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