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아멘!”…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갱신 언어
  • 이기우
  • 등록 2023-01-20 12:05:43

기사수정



연중 제2주간 금요일(2023.1.20.) : 히브 8,6-13; 마르 3,13-1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들으러 모여든 이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독서에서는 구약시대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옛 계약과 대비되는 새 계약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이 두 말씀을 종합하여 생각하자면, 예수님께서 생애 마지막 때에 성찬례를 제정하시면서 열두 제자와 맺으신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이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갱신하고 있으므로,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열둘로 한정하여 뽑으신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때 열두 지파 체제로 시작했었기 때문입니다. 이 체제는 야곱의 열두 아들을 각 지파의 시조로 하여 편성하였으므로 야곱의 조부인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상 맨처음 약속하신 바가 실현되었다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떠나올 때 모세를 중재자로 하여 하느님과 백성이 맺은 시나이 계약의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는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판관 시대를 거친 후 세워진 왕국도 실상은 열두 지파의 연합체제였고, 솔로몬 이후 왕국이 분열되는 과정에서도 남유다 왕국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이 남아서 유지했고, 나머지 열 지파는 뭉쳐서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독립해 나갔을 만큼(1열왕 12,20-33 참조), 열두 지파 체제는 이스라엘 백성의 실체였습니다. 


하지만 두 왕국이 멸망하고 바빌론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후에도 그리스계 왕조의 지배와 로마제국의 식민지배 등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억눌리던 5백여 년이 흐르는 동안에 혈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열두 지파는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지파 체제가 붕괴된 원인이야 여러 민족들과 섞여 살면서 혈통의 순수함을 상실한 것이지만, 가장 큰 근본 원인은 열두 지파 체제를 이끌었던 리더십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혈연 대신에 하느님 말씀을 실행하는 이들 가운데에서 선발하되 옛 지파 체제를 복원 내지 재출발하는 의미에서 열둘을 뽑아서 제자 공동체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슬픈 역사를 반영하면서도 새롭게 역사를 여는 예언자적인 상징행위라고 할 것이고, 매우 비장한 의도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로써 열두 제자로 시작된 그리스도교는 새 이스라엘로 불리게 됩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옛 계약은 시나이 계약이고, 새 계약이란 최후의 만찬에서 세우신 성찬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세우신 이 새 계약의 의미를 더하여,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계약이란 말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하에서 더 실질적으로 열두 제자들이 불리운 까닭은 세 가지였는데, 이는 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습니다(마르 3,14-15). 


첫째,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것. 둘째, 세상에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하는 것. 셋째,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 이 세 가지는 오늘날에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구속력을 발휘하는 조건입니다. 


첫째,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면 우리는 언제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성사에 참여하는 생활과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생활을 뜻합니다. 성사와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혼을 하느님의 영과 소통하게 해 주는 그리스도 현존의 통로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면 우리의 삶은 교회 내 직분과 상관없이 선교적이어야 하고 복음선포적이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그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직업과 활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생계 유지와 가족 부양이라는 노동의 동기 또한 이 기본 목표에 앞설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증거하는 예수님 제자들을 보살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마태 6,33)고 가르치셨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덤으로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마귀를 쫓아내는 일 즉 구마 행위 역시 우리네 삶과 일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세상을 죄악으로 가득 차게 만들고 있는 마귀와 그 결과인 사회악에 맞서서 언제나 공동선의 편에 서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과 일이 그 어느 것이라도 반대편 전선으로 넘어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구현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반대되는 가치를 편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조건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사도로 임명하시면서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조건에 충실하면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사기지은과 성령의 이끄심으로써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악을 몰아낼 수 있도록,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확인하면서 계약을 갱신하는 행위가 영성체 예식입니다. 그래서 사제가 신자에게 축성된 성체를 주면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기도와 이에 신자가 응답하는 ‘아멘!’이라는 기도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갱신 언어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