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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가 물려받은 세 가지 보화
  • 이기우
  • 등록 2022-12-03 15: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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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2022.12.4.) : 이사 11,1-10; 로마 15,4-9; 마태 3,1-12


전례의 취지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며 인권 주일입니다. 인권 주일이 제정된 취지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그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받는 현실을 개선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현실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천주교회는 하느님의 나라의 가치들을 실현하려는 교회의 가르침을 사회교리로 가르치고 있으며, 이를 일깨우고자 이번 주간을 사회교리 주간으로 지냅니다. 


말씀의 흐름


오늘 미사의 첫째 독서인 이사야 예언서는 하느님의 영이 메시아 가문에 머물러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하는 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이사 11,1). 이렇게 하느님의 영이 사람들에게 내리면, 우선 불의가 판치는 대신에 정의가 자리를 잡게 될 뿐만 아니라(이사 11,3-4) 평화가 실현되는 세상이 찾아오게 되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이사 11,6)는, 초현실적이고 시적인 표현이 그것입니다. 그러자면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해야 합니다. 


오늘 미사의 복음은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의 죄악에 물든 죄를 씻어야 하고 메시아에 의해서 다가올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세례자 요한의 입을 빌어 알려줍니다. 그리고 오늘 미사의 둘째 독서인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메시아로서 드러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로마 15,5-6).


인간의 존엄성


인간은 다른 피조물에 비해 수명이 길거나 신체 기능이 우월해서 존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아서 그분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피조물 중에 가장 정교하게 인간의 몸을 지어내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수준 높은 의식을 진화시키시어 당신과도 통교하게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인간 의식의 또 다른 이름인 혼(魂)이 당신의 영(靈)과 소통할 수 있도록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닮은 삶을 몸소 보여주시고 십자가 죽음으로 부활하신 후에 하느님의 영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로써 인간 의식은 영성으로 진화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로 생기넘치는 영혼을 지닌 존재가 되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계시와 인권 유린의 현실


하지만 인류 역사의 기원이 된 이 사건, 즉 천주강생과 예수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 이후에도 인류는 인간 존엄성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죄악을 저질렀으니, 그 대표적인 사회악인 전쟁과 노예제도와 고문과 인신매매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서서히 진화하고 이로 말미암아 문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도 이 4대 사회악은 멈추지 않았고, 20세기에 들어 수천만 명이 전쟁으로 죽어 나갔는가 하며, 노예 노동력을 값싸게 활용하려는 욕심에 눈이 먼 백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흑인을 짐승처럼 사냥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로 2천만 명 이상 팔아넘기던 만행은 18세기에 동력기관이 발명되고 나서야 멈추었습니다. 


인권을 유린하는 참혹한 현실이 극에 달하자 이에 대한 각성으로 인권 의식이 서구 사회에 싹트기 시작했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이 커지자 인류는 전쟁은 물론, 노예제도를 비롯한 사회신분 차별 제도와 고문과 인신매매까지를 아울러 금지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국제연합이 1948년 12월 10일에 발효시켜 모든 회원국에 법률로 반영토록 강제한 세계 인권 선언입니다. 


사회교리가 생겨난 배경


이토록 야만적인 만행을 인류가 저지르는 까닭은 비록 혼은 있으되 하느님의 영과 소통하지 못하고 악한 영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권 선언이 각국에서 법률로 제정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야 했으니, 가톨릭 사회교리 역시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이 힘없이 짓밟히던 사회 현실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인류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세상을 이룩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이며,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영을 우리의 혼에 담아서 말 그대로 하느님과 소통하는 ‘영혼을 지닌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말을 하고 글을 쓰며, 첨단의 과학기기를 사용한다 해도 문명을 이룩했다고 볼 수 없고 야만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는 대신 죄를 조장하는 악한 영에 끌리면, 모처럼 현대에 들어서서 인류가 금지시킨 전쟁과 차별, 고문과 인신매매 등의 사회악 현상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교리의 목표


모든 운동 경기가 상대방에 대한 방어도 해야 하지만 공격도 효율적으로 해야 경기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듯이, 세상의 죄에 대한 싸움에서 이기려면 인권 유린에 대한 방어 대책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강구되어야 합니다. 가톨릭 사회교리가 가르치는 내용 역시 이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신앙 교리의 열매인 사회교리의 목표는 부활 신앙이며 부활의 행동으로 새로운 사회, 즉 새 하늘에 따른 새 땅을 이룩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자면 역시 인간은, 그리고 인류는 하느님의 영에 이끌려야 하고, 명실상부하게 영혼을 지닌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재화의 보편성


인간의 존엄성에 따라서 사회교리가 가르치는 그 다음의 중요한 원리는 재화의 보편성입니다.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살아가자면 신체의 건강과 마음의 행복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재화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먹고 입고 쉴 수 있어야 하고,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며,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조건들이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재화가 각자의 노동으로 마련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땅을 주셨고 인간이 자기의 노동으로 땅을 경작하여 얻을 수 있도록 이성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노동과 이성으로써 성취하는 열매인 기술과 지식 또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이 선물을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고르게 얻을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재화의 보편성입니다. 


사회의 공동선


사회교리의 으뜸 원리가 인간 존엄성이요 버금 원리가 재화 보편성이라면 이를 뒷받침하는 바탕 원리는 사회의 공동선입니다. 인권을 존중받고 필요한 재화를 얻어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 즉 공동선에 봉사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공동선에 기여해야 하는 몫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연대성과 보조성


인간의 존엄성과 재화의 보편성 그리고 사회의 공동선, 이 세 가지 주요 원리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상의 원리는 연대성과 보조성입니다. 연대성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에 따라서 모든 이가, 특히 힘 없는 약자들에게는 더욱, 차별하지 말고 협동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인간 사회의 목적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힘이 모자라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힘을 보태줌으로써 자아실현이 가능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연대성 원리는 보조성 원리로 나아갑니다. 나라 전체에서 공동선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정부인데, 비록 정부의 책임에 비해서는 보조적인 역할일지라도 개인들이나 특히 가난하고 힘 없는 약자들에게 있어서도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와 역할은 마땅히 그리고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리가 보조성입니다. 


그래서 이 원리는 자주성 또는 자율성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 상급 기관 또는 상위 조직은 지원하고 교육하며 돌보아주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연대성과 보조성이야말로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가치입니다. 


교우 여러분! 가톨릭교회가 물려받은 세 가지 보화가 있습니다. 성체성사와 성모신심과 사회교리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영을 우리네 혼에 부여받고 소통합니다. 성모신심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과 소통하는 본본기로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을 찬송하셨던 바,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하는 찬송이야말로 사회교리의 요체입니다. 거룩한 종교와 공정한 정치와 공평한 경제가 실현되는 새로운 세상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새 땅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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