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예수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 이기우
  • 등록 2022-04-15 17:06:21
  • 수정 2022-05-06 11:03:45

기사수정



부활 성야 미사 (2022.4.16.)


1.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부활은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리로 되돌아가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부활을 깨달은 제자들은 십자가 죽음 이전에 그분이 알려주신 가르침이 모조리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임도 뒤늦게 깨닫게 되었으며, 그분이 베푸신 기적들도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신 표징이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로 예수 부활이 아니라면, 제자들의 믿음이 생겨날 수도 없었고, 사도가 된 제자들의 믿음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교회도 세워질 수 없었으며, 우리의 믿음도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예고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셨습니다. 


2. 이렇듯 믿음을 굳게 지니게 된 제자들에게는 그 믿음을 전하고자 하는 불타는 의지가 생겨났고,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자신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발현 체험이 숨어 있었습니다. 발현 체험이 부활 신앙의 비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모든 이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 수난과 죽음 이전에 당신을 알아보고 믿었던 제자들과 소수의 아나빔들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 


박해한 자들과 예수님을 멀리한 자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이 엄연한 사실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그분의 부르심이 먼저 있어야 하지만 그 부르심을 들은 인간의 응답과 노력도 필수적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부르심과 응답이 오고 간 후에라야 발현 체험이 가능해지고 그 체험 위에서 부활 신앙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 신앙으로 거듭 태어난 사도들과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맞부딪친 현실은 유다교와 로마 제국의 박해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유다인이었고 예수님께서 율법적 유다교에 의해 박해를 받아 돌아가셨기에 자신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이기는 하지만 ‘참 이스라엘’이라고 자부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새 이스라엘’이라고는 여기지 않았고 따라서 ‘옛 이스라엘’에 속했던 유다인들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인정하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3.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도, 유다인들을 향한 복음 선포 활동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질 수 있었고, 이는 매우 놀라운 선교 성과를 가져 와서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한 번에 삼천 명 가량이 세례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사도 2,41).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제자 시절의 비겁한 처신과 얄팍한 믿음 대신에 용감한 처신과 담대한 믿음으로 여전히 박해를 가하려 하던 유다교 최고의회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죽을 각오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처신이었고, 더 근본적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처신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도 돌려세워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삼으신 덕분에, 그리스도 신앙과 예수 부활 믿음은 당시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지중해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다교를 고집하던 해외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은 참 이스라엘로 자부하던 그리스도인들을 시기 질투하였고, 로마 당국에 고발하기도 하였고 이 옛 이스라엘에 속한 유다인들의 고발이 로마 박해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에서 다신교 풍습을 물려받았는데, 이들 다신교의 신들은 사람으로서 특출난 재능을 발휘하여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여긴 존재들이었기에 황제도 선정을 베풀면 죽은 후에 신이 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도미티아누스 황제부터는 이미 살아있는 시점에서 신으로 자처하는 황제숭배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제국이 된 로마는 이민족들과 벌인 숱한 정복전쟁을 통해 종교와 사상과 문화가 제각기 다른 민족들로 이루어진 대제국을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하여 도처에 황제의 흉상을 세워 놓고 이 상에 경배하도록 하였는데, 그리스도인들은 한낱 사람에 불과한 황제를 신으로 경배하라는 우상숭배 정책에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4. 눈에 보이는 자연과 사물을 인간 이성으로 추리하고 분석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합리주의적 가치관이 그리스적 사유방식입니다. 이를 물려받아 실용적으로 적용해서 지중해 세계를 한 제국으로 통합시켜 다스리려 했던 로마인들이 보기에 한낱 사람에 불과한 나자렛 예수가 정치적 반란을 일으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실을 가지고, 그가 부활했다고 입증될 수도 없는 허무맹랑한 미신을 퍼뜨리고 심지어 그 나자렛 예수가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로마 박해 250년 동안 사도들과 신자들은 박해를 받았고 희생되었으며 치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신자들은 더욱 치열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상하며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였고,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자기비허의 신앙을 깨달았으며, 사기지은을 발휘하시어 성령으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기에, 그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신자들은 늘어났고 공동체들은 더욱 널리 퍼졌습니다. 이에 대한 산물이 네 복음서요, 사도행전이며, 사도들의 편지들이고, 묵시록 등 신약성경입니다. 


5. 그래서 신구약성경의 핵심만을 발췌하여 말씀으로 선포하는 부활 성야 미사는 일년 중 교회가 거행하는 미사 중에서 가장 장엄하고 성대한 전례입니다. 창세기가 진술하는 창조 신앙에서부터, 탈출기가 증언하는 해방 신앙을 거쳐서, 여러 예언자들이 예고한 메시아 대망 사상에 이르기까지 무려 아홉 꼭지의 성경 말씀이 봉독되었습니다. 


그만큼 인류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선포함으로써 참된 하느님 신앙을 받아들이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고, 대단히 많은 구도자들이 일생 동안 치열하게 사색을 거듭해 왔으며, 수많은 신앙인들이 이 귀하고 어렵게 얻은 진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쳐 증거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편하고 기쁘게 예수 부활을 축하하며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네 육신 생명이 어머니 뱃속에 생겨날 때 단세포 생명체 시절부터 인류가 진화해 온 자취를 압축해서 되풀이한다고 하듯이, 우리네 영혼의 생명을 드러내는 부활 신앙도 이 부활 성야 미사를 기점으로 되풀이합니다. 예수님을 생전에 잘 알고 그분의 가르침까지도 수도 없이 들었으면서도 좀처럼 믿음을 간직하기 어려웠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가톨릭교회에서 그리스도 신앙의 세례를 받고 숱하게 성경 말씀을 들었고 성찬 전례에 참여하여 성체를 받아 모셨으면서도 기계적이고 자동화된 습관이 되어 버린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신앙이 미숙한 채 머물러 있게 됩니다. 


6.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발현 체험을 시켜주신 덕분에 제자들은 믿음을 성숙시킬 수 있었고, 성령까지 받은 다음에는 사도가 되어 용감하게 신앙을 전하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남겨주신 발현의 양식은 다섯 가지나 됩니다. 


첫 번째로,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믿는 이들 안에 현존하십니다. 말씀에서 주님을 알아보는 뜨거운 체험이 믿는 이들에게 첫 번째 부활 신앙의 기운을 줍니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는 성찬으로 오십니다.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 영혼 생명을 먹여 살리는 음식으로 내어주신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도 당신처럼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자기비허의 영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은총을 받기를 촉구하십니다. 


세 번째로 서로의 발을 씻어주듯이 섬기고 특히 되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그렇게 섬기는 삶이 세속적인 눈으로는 어리석어 보일지언정 그것이야말로 최후 심판에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귀한 기준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네 번째로, 모든 세례 받은 신자에게는 성령께서 머물러 계시므로 서로의 신앙 감각을 존중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교회가 죽음도 물리치지 못하는 천국의 열쇠가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섯 번째로, 그리하여 믿는 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사도직을 행할 때 서로를 존중해서 공동으로 합의하는 인격적이면서도 민주적인 구조를 입증할 때 교회는 세상의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빛이 되리라고 보증하셨습니다. 이 다섯 가지 현존 양식이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발현 체험의 장입니다. 


7. 매사에 합리적이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을 물려받은 로마인들이 지중해 세계의 다민족을 정복하여 다스리며 매사에 실용적이고자 했으면서도, 유독 그리스도 신자들에 대해서만은 굶주린 맹수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등 야만적으로 죽이며 박해를 했던 데에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 신앙에 대한 몰이해와 조소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양상이 겉으로 달라지기는 했을 뿐 이런 몰이해와 조소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하여 알려주신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모든 풍조와 행태가 모두 다 여기에 해당됩니다. 비인간적인 물신풍조와 자본숭배사상이 그러하고, 심지어 반인간적인 생명경시풍조와 대규모 난민을 발생시키는 국제분쟁과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는 전쟁 행위 등이 또한 그러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는 이렇게 알아듣기 어려웠어도 하느님께서 베푸신 자비와 사랑을 겸손되이 실천하는 믿는 이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전 세계에 그리스도 신앙이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미 부활을 살아간 이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하느님께서 되고 싶으셨던 존재인 인간이, 십자가에 달려 못 박힐지언정 그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물러서지 않으며 취소될 수도 없는 존재인 인간이, 그리하여 육신 생명 그 이상의 귀함을 갖춘 인간이 하느님을 닮아 존엄한 존재라는 진리도 사회적이고 법적으로 보장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진보가 예수 부활 신앙의 조각들입니다. 발현 체험이 부활 신앙의 비결이라는 신앙의 공리는 제자들에게나 오늘날의 제자들인 우리에게나 여전히 유효한 진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현존양식에 충실하시기를 부탁드리면서, 그리하여 이룩될 우리의 부활과 함께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