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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거룩하게 하는 죽음의 힘 - [이신부의 세·빛] 고결하고 훌륭한 죽음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11-16 13:43:47
  • 수정 2021-11-16 13: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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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화요일(2021.11.16.) : 2마카 6,18-31; 루카 19,1-10

 

마카베오 시대에 뛰어난 율법 학자였던 엘아자르는 헬레니즘 정권이 유다교를 금지하며 율법이 금하는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자, 그는 더럽혀진 삶을 사는 것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서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갔습니다. 


이런 행동에 대해서 마카베오서의 저자는 엘아자르가 율법을 숭고하고 거룩하게 여겼기 때문에 고결하고 훌륭한 죽음의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율법 종교인 유다교가 이 마카베오 시대에 율법을 금지시키는 박해를 받으면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그 권위와 진정성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사건이자 기록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리코에 살던 부유한 세관장 자캐오는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계신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터에 자기 마을에 오시는 그분을 만나 뵈오려 애썼지만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고 드디어 예수님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자 회개하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읽으신 예수님께서는 주변 사람들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를 부르시며 하룻밤 묵어가시겠다고 청하셨습니다. 


루카는 이 뜻밖의 호의에 감격한 자캐오가 자진해서 재산을 그것도 파격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놀라운 회개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직업으로 돈을 많이 모은 부자라 하더라도 하느님께 돌아오겠다는 사람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기꺼이 환영하셨다는 사실과 함께, 당시의 대표적 부유층이었던 바리사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캐오가 파격적인 자선을 선언한 회개는 매우 예외적인 것이었음도 알 수 있습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와 비교해 보시면 그 대조적인 정도와 예외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시대적 한계는 있다 하더라도 명예를 소중히 여겼던 엘아자르의 고결한 죽음과 이스라엘의 부자들 가운데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매우 대조적인 모범을 보여준 자캐오의 선심성 회개는 생존과 소유라는 인간 본성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미사에서 들려오는 하느님 말씀의 초점입니다. 

 

사실 회개는 작은 죽음입니다. 결코 죽지 않을 듯이 살던 사람들이 막상 죽음을 의식하게 되면 그 어느 것도, 예를 들면 권세는 물론 재산도, 지식이나 명예까지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하느님 앞에 회개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다행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그것은 부활입니다. 더욱 다행하게도 가톨릭교회의 성인성녀들을 공경하게 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그것은 그들처럼 우리도 그 부활을 지금 여기서 살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에 못지않게 고귀한 것을 함께 주셨으니, 그것은 죽음입니다. 삶이 있어야 죽음도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싫어하기까지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누구나 죽어야 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죽지 않을 것처럼 회개를 미루고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와는 달리, 이러한 깨달음에 접한 사람은 남은 생애 동안 하느님을 닮고자 거룩하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삶을 거룩하게 하는 죽음의 힘이요, 죽음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닮고자 거룩하게 사는 사람은 죽어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서 이미 살아있는 동안에 천국을 사는 사람은 거룩함을 넘어 이 거룩함을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부활을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부활의 삶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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