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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인공인 '지구시민의회'를 펼쳐보자 - (이원영) 현실정부와 국회를 견인하는 촛불민중의 마당
  • 이원영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10-12 13:44:33
  • 수정 2021-10-12 13: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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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겨울, 베를린을 거쳐 함부르크로 가던 길목에 있던 30만 인구의 빌레펠트. 9년이 지난 지금도 빌레펠트의 환경담당 부시장이 도시 전력의 원전 의존율 50%를 2018년까지 6년 만에 0%로 전환하겠다고 설명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집집마다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시가지와 인근 삼림에서 얻어지는 막대한 목재팰릿으로 열병합 발전을 하는 등 실질적인 변화를 꾀했고 이를 주도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그런 의욕이 기반이 되어 2021년 현재 독일은 17개 원전 중 1개만 남겨놓은 상태다. 생명과 윤리에 바탕하고 있는 독일 탈원전의 진면목은 이런 지방자치의 힘에 있다.


▲ 2012년 독일 빌레펠트시 방문시 환경담당 부시장이 일행에게 설명하는 장면이다. ⓒ 이원영


그 과정이 더욱 인상에 남는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진 후 400인의 시민위원회가 만들어져 그러한 공동의 목적을 함께 설정하고 함께 노력했다는 것. 공식적인 의회가 있음에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가동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당시 메르켈 정권이 탈원전 선언을 하도록 민의가 결집된 레전드 같은 사건이 있다. 모든 직종의 인사를 망라한 17인의 윤리위원회가 구성되어 8주 동안 매주 생방송 공개토론을 통해 모든 국민이 실시간으로 질의응답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동시키고 마지막 주에는 11시간 연속 공개토론을 한 것이다. 그 결과 탈원전이 윤리적으로 옳을 뿐 아니라, 그 길이야말로 지구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확신이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한 사건이다.


결과 못지 않게 과정이 의미심장하다. 마치 의사당에서 의원들이 펼치던 논쟁을 '국민이 참여하는 의회'의 형식으로 국가적 과제를 풀어낸 사건이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농민과 대조되는 뜻의 시민이 아니라, 내가 나라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표현한 '시민'의 '시민의회'라고 할 만하다. 지구촌의 자산이 될만한 사건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피어 어셈블리'


이 두 사건은 세계적 문명학자 제러미 리프킨도 강조하는 '피어 어셈블리'(peer assembly)를 연상케 한다. 피어 어셈블리는 참여자가 동일한 자격을 갖는 평등한 시민들의 의회를 뜻한다. 그는 시민위원회와 같은 유형의 자발적 의사결정체가 그린뉴딜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고, 기후위기 대응의 첨병이 될 것이라고 그의 저서 『글로벌 그린뉴딜』에서 갈파한다.


"EU에서 피어 어셈블리를 설립한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은 전환 과정의 각 단계에 즉각적으로 참여하고 의견과 피드백을 제공하는 지역 시민 300명으로 구성하는 것이 최적이라는 사실이다. 피어 어셈블리는 포커스 그룹이나 이해관계자 집단이 아니라, 논의되는 사안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그린 뉴딜 로드맵에 통합될 제안과 이니셔티브의 준비에도 긴밀하게 관여할 대중의 수평적 협의체이다."


관건은 이런 가상의 평등의회를 시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성정치권을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세로 신속하게 전환시키려면 그 방향으로 선도하는 시민의 깨어난 움직임이 필수적이라는 것.


"여러 성공 사례와 그것이 수반하는 기회 및 도전에 관해 전 국민이 참여하는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면 정치적 경계를 넘나드는 수많은 공동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선거에서 투표권행사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을 능가하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 역학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피어 어셈블리 거버넌스의 본질이다."


그렇다. 기후위기시대에 새로운 정치역학을 창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인류는 와 있는 것이다. 아테네 이래 직접민주주의의 멍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진 것. 우리에게는 이 대목에서 중요한 계기로 작동할 수 있는 사건이 있다. 다름 아닌 5년 전의 촛불혁명이다.


당시 한반도 남쪽에서 벌어진 촛불혁명은 지구촌 시민들에게 희망을 준 사건이다. 유혈의 프랑스혁명과는 다르다. 몇 달 동안 지속되도록 매주 수백만 명이 평화적 혁명에 집중한 체험은 인류의 쾌거다. 유사 이래 최대의 민주적 의사결정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더욱 자극스러운 사실은, 이를 수천 명의 직접민주주의의 아테네와 같은 그릇에 담는 기술이 이 시대에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비용도 거의 발생하지 않고 효율적 관리가 가능한 데다, 지구촌 구석까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까지 동시에 가능해진 시대다.


촛불민중의 에너지를 살리려면


하지만 촛불혁명이 무색하게도 지난 5년간 국내에는 개혁과제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솟아오르는 잠재력에 걸맞는 국가경영의 거시전략도 부재한 상태다. 정부 그리고 국회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내년에 새로 출범할 정부가 개혁의 의욕을 보이더라도 국회는 그대로다.


촛불혁명을 해낸 민중의 에너지와 지혜가 결집되어 함께 헤쳐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에너지를 담아낼 장치다. 배의 나아갈 방향을 잡아 힘을 싣는 역할인 '키'(우리말)와 같은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지구촌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 오징어게임 >의 위력은 무엇인가? 바로 나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대사도 나온다. 관전자로서 시청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처럼 불안과 긴장을 직접 겪는 실제상황에서 지혜가 나오고 집단지성이 결집된다.


의제설정능력이 시민의회의 가장 큰 기능이다. 사건이 전개되는 기승전결의 기에 서는 것이다. 의사결정과정의 첫 단추다. 가장 큰 권력인 의제설정의 권력을 가진 언론은 직접 선출된 권력이 아니다. 이를 바로 잡아야 진짜 민주주의다. 의제설정을 주도할 수 있는 21세기 아테네다.


지구촌의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각 나라 행정부 의회 시스템만으로 기후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피어 어셈블리'와 같은 평등한 의사결정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국민적 장치가 필요하다. IT소통기술이 기반이 되는 온라인 의회다.


그동안 사회의 목탁같은 기능을 해온 단체들의 주장 정책들을 망라하고 수렴해서 진정성 있는 개혁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현실의 정부와 국회를 견인해갈 시민의회다.


시민의회의 선출과 운영에 대한 방안들


그동안 주창되어온 정책들을 상호교환하고 통섭하는 과정을 통해 상향식(Bottom Up)으로 중요한 정책을 부각시키는 방안을 강구한다. 줌 화상회의와 SNS를 통한 소통을 한다. 참여단체의 집단적 의사결정구조로 진행한다. 운영에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 점이 기술발달의 혜택이다.


재외동포까지, 세계로 뻗어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많은 인재풀이 필요하다. 내부를 개혁해서 밖으로 치고나가는 동력을 얻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관심과 에너지를 내부개혁의 원동력으로 삼는 전략이 필요하다.


연필로 그려 보는 시민 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참여를 희망하는 모든 이들을 인구비례에 가깝게 500명 선출한다. 자천타천 입후보 가능한 인원은 10배수 이내로 선착순 마감한다.


누구나 선거인단에 실명으로 참여할 수 있다. 백만 명이 목표이지만 시행초기에는 목표에 구애받지 않는다. 백만명 규모의 선거인단 가입 및 투표 그리고 집계 등의 업무가 IT기술로 손쉽게 관리된다는 게 이 시대의 이점이다. 두 가지 방안이 떠오른다.


1) 나이 등의 조건으로 선출하는 방안

나이 10세 단위로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이상으로 구분해서 선출 인원을 결정한다. 성별은 남녀동수를 기준으로 하되 최종선출자 중 어느 한 쪽의 비율이 6:4의 범위를 넘지 않도록 한다. 지역편차도 감안한다. 서울 경기인천 대전충남북 부울경 대구경북 광주전남북 강원제주 재외동포의 8개그룹으로 묶는다.


2) 시민의원의 선출풀을 상임위원회로 구분하여 운영하는 방안

연령별구분은 1)안과 동일하되 이후의 구분은 주제별 상임위별로 인재풀을 만든다. 상임위 종류는 국회 상임위에 준하여 책정한다.


▲ 지난 9월부터 연속적으로 열리고 있는 검언개혁촛불행동의 한 장면. 유튜브와 줌(ZOOM)을 활용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온라인상에서 집회행사를 하는 모습이다. ⓒ 이원영


투표인단은 등록 자유다. 시민의원 임기는 총 4년이다. 그해의 의결권을 갖는 의원정수는 100인이다. 추첨으로 매년 100명 선출한다. 임기 1년에 연임불가이고 중임가능하다. 첫해는 500명 중 100명 추첨하여 선출하고 이후 3년간은 400명 중 100명을 추첨으로 선출한다.


4년 동안 한 번도 의원 활동 못하는 의원들도 나온다. 명예직이다. 운이 좋은 사람은 두 번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추첨으로 그해 의결 담당 의원을 뽑지만, 발의는 500명 의원 모두가 할 수 있다. 500명 모두 상임위에 속해서 발언도 할 수 있다. 의결만 1년 단위의 의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명예를 걸고 의결에 대한 책임을 진다.


국회에서 다룰 의제를 선점해서 논의한다. 관심이 모이는 주제라면 그리고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국회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기록에 남는다. 누구나 언제든지 쉽게 볼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다.


시민의회가 맡을 당장의 의제는 부지기수다. 검언개혁/부동산및주거/기본소득/교육개혁/기후에너지전환/한반도평화및외교/4대강/원전문제 등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이들이 업그레이드 되어야 할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 방향을 도출하고 정부와 국회에 제시한다.


지금 줌(ZOOM)은 멋진 아카이브를 공짜나 다름없이 제공해준다. 21세기 하고도 21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시점이다.


유엔과 쌍두마차가 될 '지구시민의회'의 모델


지금 지구촌의 진정한 위기는 민주주의의 후퇴에 있다. 바로 잡을 촛불이자 횃불이 필요하다. 형식적인 의회가 아닌 민의를 담는 방법과 그릇에 대한 비전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가 만들 시민의회는 유엔총회를 이끌 새 기구인 '지구시민의회'의 모델이다. 지구촌은 지금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UN은 의회기능이 없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집행부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자력을 진흥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같은 기구는 UN의 통제조차 받지 않고 있다. 아직 인류는 위기다.


기후위기를 극복한다손 치더라도 이대로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체르노빌 후쿠시마라는 공포의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구촌 민중의 뜻이 작동하는 '의회' 기능을 갖는 국제적 조직이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IT소통기술의 혁명기에는 그 일이 어렵지 않다. 이미 BTS의 아미(Army)와 같은 팬덤 문화가 이런 기술의 뒷받침으로 단단하게 구축되고 있다.


80억 지구촌 민의를 모으는 구조로 만들어가야 한다. 더 이상 핵무기와 핵에너지의 배후자 금융자본 그리고 그 하수인으로 전락한듯한 국가권력 같은 기득권들에게만 하나뿐인 지구를 맡겨둘 수는 없다. 지금 그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게 드러나고 있다.


'지구시민의회'가 만들어진다면 그들을 바로 잡을 민중의 열정적인 사자후를 펼치는 마당이 된다. 이번 팬데믹이 열어준 인류 진화의 급소다.


이원영 (수원대 교수, 한국탈핵에너지학회 부회장)



[덧붙이는 글]
이 글은 < 오마이뉴스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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