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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열린 성직자 성범죄 재판, 왜 이제야 시작 됐나
  • 끌로셰
  • 등록 2020-01-21 15:57:18
  • 수정 2020-01-21 16: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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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나르 프레나(74세) (사진출처=ALEX MARTIN/EPA)


1970년대 후반부터 1991년까지, 가톨릭교회 15세 미만 남자 스카우트 아동 70여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프랑스 리옹교구 전 사제 베르나르 프레나(Bernard Preynat)가 30년 만에 재판정에 섰다. 


일명 프레나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 신의 은총으로 > (Grâce à Dieu) 라는 제목으로 2019년 프랑수아 오종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고,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영화는 지난 16일 한국에 개봉했다.

 

30년 만에 가해자와 한 자리에 선 피해자들은 “사과를 듣고 싶지 않다. 공소시효 만료 여부를 떠나, 더 이상 잠정적 피해자가 아닌 사법부가 인정하는 진짜 피해자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털어놓았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혐의로 재판 중, 프레나에 징역 8년 구형

 

프레나는 리옹 형사법원에서 ‘15세 미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적 침해’ 혐의로 재판에 부쳐졌다.  

 

미성년자 성범죄 가해자가 자신의 직위를 남용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15만 유로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프레나의 경우 가톨릭교회 사제직의 권위를 남용해서 자신이 지도하는 스카우트 단원들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상황이다. 지난 2019년 7월, 프레나는 리옹교구법원의 판결로 사제직을 박탈당했다. 

 

프레나를 상대로 소를 제기한 인원은 총 15명으로, 개인 피해자 10명과 5개의 비영리 단체다. 재판부가 파악한 35명의 피해자들 중 20명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재판부가 파악한 피해자들 외에도, 피해자 단체에 따르면 프레나에게 가해를 당한 피해자는 7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판은 아동성범죄 미신고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리옹가톨릭 대교구장 필리프 바르바랭(Philippe Barbarin) 추기경의 항소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프레나의 재판 중에 '은폐'에 관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될 경우 바르바랭 추기경의 책임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바르바랭 추기경의 항소심은 오는 30일 날 열린다. 

 

프랑스 연금개혁안 단일화 반대 파업에 변호사들이 참여하면서 13일로 예정되었던 프레나 신부의 재판은 14일로 하루 연기되기도 했다. 

 

잠정적 피해자가 아니라, 사법부가 인정하는 진짜 피해자가 된다는 것


▲ 피해생존자 피에르-에마뉴엘 제르망-틸(왼쪽 두번째)과 프랑수아 드보(왼쪽 네번째) (사진출처=KONRAD K./SIPA)

 

프레나의 재판을 상세히 보도한 프랑스 가톨릭 일간지 < La Croix >는 이번 재판을 통해 “베르나르 프레나는 더 이상 상징이 아닌 구체적인 얼굴과 목소리가 될 것”이라며 “20년간 본당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재판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해자 스테판 오아로(Stéphane Hoareau)는 프랑스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재판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프레나가 교회 고위관계자들과 맺고 있던 관계”라면서 “프레나가 바르바랭 추기경과 나눈 대화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은폐에 대해 더 많은 것이 알려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피에르-에마뉴엘 제르망-틸(Pierre-Emmanuel Germain-Thill) 역시 “내게는 교회 고위관계자들이 프레나를 40년 동안 은폐한 것이 확실하다”고 말하며 “1991년 이후의 다른 사건들이 있다면 털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프레나의 성범죄 피해자들이 함께 창립한 피해자 공동대응단체 라 파롤 리베레(프랑스어: La Parole Libérée, ‘해방된 말’이라는 의미 - 역자주)의 창립자 알렉상드르 에제(Alexandre Hezez)는 처음으로 프레나 신부를 프랑스 법정에 고발한 피해자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제까지는 리옹교구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으니 재판에서는 다시 한 번 프레나 신부의 행위 자체와 공소시효 여부를 떠나 이 행동이 피해자들에게 끼치는 여파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레나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더 이상 우리가 잠정적 피해자가 아닌 진짜 피해자, 사법부가 인정하는 진짜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에제는 “피해자들의 투쟁과 고통이 이어지는 가운데 라 파롤 리베레와 함께 우리는 수십여명이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재판을 하는동안 소를 제기한 당사자들은 가해자와 마주하여 언론의 조명 한가운데서 내밀한 이야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은 지금까지 목소리를 낸 나와 같은 사람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입장을 밝힐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랬어야 하는데...

 

재판정에서는 기존에 이미 언론과 사법부에 증언했던 피해자들 외에도 지금까지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4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열린 재판에서는 프레나에 대한 심문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재판 마지막날인 17일에는 피고에 대한 구형이 이루어졌다.

 

공판에서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프레나의 범죄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 되었다. 프레나는 전반적으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들이 프레나가 했다고 주장하는 일부 발언들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프랑스 시간으로 14일 열린 공판 첫날에는 프레나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면서도 “당시에는 내 행동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처벌 대상이 되는 행동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피해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프레나는 매주 주말 오후에 스카우트 활동 때마다 아동을 추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일주일의 캠프 동안 4-5명의 아동이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으니 실질적으로 매일 저녁 가해를 저지른 셈”이라고 지적했다. 

 

프레나가 일부 피해자들이나 당시 상황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재판부는 ‘피해자가 그런 장면들을 상상했다는 것이냐’,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되물었고 이에 프레나는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갖고 있는 기억을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프레나는 1990년 당시 교구장이었던 알베르 드쿠르트레(Albert Decourtray) 추기경에게 다시는 아이들을 만지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추기경은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며 프레나를 처벌하지 않고 다른 본당에 전출시켰다. 이후 같은 해 9월, 프레나는 재판에 나온 피해자 중 한 명인 피에르-에마뉴엘 제르망-틸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 

 

재판부는 범죄발생 당시에 프레나가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재판부는 재판 이틑날 프레나에게 ‘피해 아동들이 당신을 만지고 싶어했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었고 프레나가 아니라고 답하자 ‘그렇다면 아이들이 강요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으면서 당시의 행위가 사제로서의 권위를 이용한 강요임을 지적했다. 그러자 프레나는 “그랬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외에도 성범죄의 여파로 가정을 꾸리지 못하거나, 자신을 만지는 일이 두려워 미용실에도 가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있는 등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교구 고위관계자들의 침묵과 은폐 

 

▲ 리옹대교구장 필리프 바르바랭 추기경 (사진출처=Keystone)


프레나는 이틑날 공판에서 2010년 3월에 자신이 다른 본당으로의 전출된 일과 관련해 교구장인 필리프 바르바랭(Philippe Barbarin) 추기경을 만나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나 많은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바르바랭 추기경은 아동성범죄 미신고 혐의 재판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레나는 “사람들이 내게 병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고해소에서 나올 때 마다 나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불행히도 다시 그런 일을 저지르곤 했다”고 고백했다. 

 

‘교회가 모든 추문을 피하기 위해 이 사건을 묵살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프레나는 “내 상급자들은 내 범죄 사실의 자세한 사항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어느 누구도 내게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라 파롤 리베레 공동창립자 프랑수아 드보(François Devaux)는 법정에서, 성범죄와 같은 범죄를 도덕적인 죄악으로만 바라보려는 경향 자체가 가톨릭교회 사고체계의 결함이며 이는 완전히 개혁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침묵, 순종, 권위 등은 가톨릭교회의 합리적 태도가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유년기에 학대·고립 경험한 프레나… 그렇다고 용서나 사면 받을 수 없어

 

공판 이틑날에는 프레나 신부의 정신감정을 담당한 의사들의 증언이 있었다. 

 

정신감정을 담당한 미셸 드부(Michel Debout) 리옹1대학 법의학 교수는 말수가 적고 엄격한 아버지와 살갑지 않은 어머니 아래서 여성에 대한 관심이 부재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스무 살까지 습진으로 고생한 탓에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또래 집단과도 멀어졌고 이러한 관계들의 부재로 “그의 인격 일부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드부 교수는 주교, 추기경과 같은 교회 고위관계자들이 프레나의 범죄행위를 신고하지 않은 것을 두고 “교회 자체에도 간극이 있다”며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정의가,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정의가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드부 교수는 프레나가 자신의 현실과 실제를 부정하는 것처럼 교회가 “이 모든 아이들의 고통을, 삶에 끼치는 영향을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프레나가 ‘자신의 성향이 치유되었다’고 말한 것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을 두고도 “그러한 움직임은 있지만 아직 완전히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면서 “이러한 움직임이 겉치레에 불과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셋째날 공판에서 피해자 디디에 바르디오(Didier Bardiau)는 프레나의 행동을 두고 “그는 매우 영리하게 의사를 표현한다”며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매우 안정적인 상태”라고 비판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프레나 측 변호사가 추천한 정신감정인이 프레나가 소아성애를 가지게 된 환경적 요인을 분석한 것에 대해 “한 행동의 근원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가 용서를 받거나 사면을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사흘간에 걸친 프레나 사건 재판 끝에 프레나에게 징역 8년이 구형되었다. 검찰은 피해자들의 연령, 범죄행위의 반복성, 사제로서의 권위 행사 등을 고려하여 형량을 결정했다. 선고는 오는 3월 16일에 내려진다.  

 

알렉상드르 에제는 구형 후 “프레나는 25년간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교회를 이용해 하나의 기업을 세웠다”며 “여전히 그러한 현실은 그대로이기에, 프레나는 진작에 처벌 받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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