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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진실 사이
  • 이기우
  • 등록 2019-09-06 17: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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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토요일 : 콜로 1,21-23; 루카 6,1-5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에서는 물론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이 이룩하는 역사에서도 모두 기준과 목표가 되시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어이없게도 종종 진실에 눈먼 법과 규정 또는 편견이나 무관심에 의해 무시되곤 합니다. 오늘 복음 내용에서도 계시와 현실 사이에, 진실과 법 사이에 간극이 벌어져 있습니다. 


어제의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먹고 마시기만 한다고 비난하던 바리사이들이 오늘 복음에서는 배가 고파서 따먹은 밀이삭을 두고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로 규정하셨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가리려고 경건한 척 위장하는 처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는 그들의 이런 처신이 악행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이를 감안한 것처럼 콜로새 그리스인들에게 충고합니다.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강생의 신비는 자유의 근원입니다.


예수님께서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셨으므로, 그분의 강생은 인간이 지닌 품위를 드높이는 것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분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만 하면 그분처럼 하느님을 닮은 존재요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은 존재로서 이 세상에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생의 신비는 자유의 근원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은 하느님을 닮도록 존엄한 품위를 지닌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이 품위를 가로막는 가난을 물리치고 누구나 존엄한 품위를 지니고 자기 행복을 추구하며 예수님처럼 공동선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평등의 가치를 겨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역사적 계시는 평등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청빈의 가치는 평등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기본 자격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청빈이 평등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규정에 얽매여서 진실을 외면하는 바리사이적 처신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부활의 신비는 사랑의 근원입니다. 


강생도 신비이면서 계시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파스카 과업도 신비이면서 계시이지만, 그리스도 신앙이 알려주는 계시 진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덧붙이자면 부활의 신비요 계시는 사랑을 위한 근원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도 사랑할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사랑이 하느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부활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생도 파스카 과업도 사랑의 기운으로 부활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 시대까지만 해도 교부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이 계시 진리의 삼박자 균형이 고대 시대 이후에 기울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아 제국을 발전시키고 싶었던 로마 제국 황제들이 공의회를 주관하기까지 하면서, 더구나 인간 이성을 중시하던 그리스적 사유를 감안하여 신앙 신조를 정식화하던 고대 교부들이 신앙고백문을 작성하면서 강생과 부활을 포함시키면서 파스카 과업의 계시는 생략을 해 버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교회의 역사는 많은 파행을 거듭했고 다행히 중세 유럽의 프란치스코가 그 균형을 되찾고자 노력했습니다. 


나자렛 선언에 이은 기념비적 선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근세에 들어서는 워낙 많은 파행이 교회의 존립 근거를 뒤흔들 정도로 커지니까 사회교리를 반포하면서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20세기 후반부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과 이 공의회를 마치고 조국에 돌아간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들이 메델린에서 2천 년 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선언을 천명했습니다. 나자렛 선언에 이은 기념비적 선언입니다. 그것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이라는 명제입니다. 


이는 겉보기에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세상을 위한 선택입니다. 계시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요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강생의 신비가 인간 존엄성의 자유를 가져다준다면 부활의 신비는 희생의 십자가를 짊어지고서라도 실천해야 할 사랑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룩해야 할 파스카 과업의 계시는 평등을 지향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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