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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 한상봉
  • 등록 2019-09-05 15:23:34
  • 수정 2019-09-05 15: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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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 가톨릭프레스 > 독자들과 나눌 수 있도록 공유를 허락해주신 신학위원회에 감사드리며 매 주 목요일 ‘시대의 징표’ 코너에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가톨릭일꾼운동을 시작하면서 ‘휴가 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짜여진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일 있을 때 일하고 없을 때는 쉬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면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으니 박복한 셈이고, 대신에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다복한 셈이다. 이 문이 닫히면 저 문이 열리고, 저 문이 닫히면 이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이래저래 일하고, 요리조리 쉴 참을 만든다.


나야 그렇다 치고, 대부분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여름이 임박하면 ‘어디로 갈까’ 늘 고민한다. 집안사정도 살피고 휴가일정을 잘 챙겨야 한다. 이런 문제만 넘어설 수 있다면 ‘휴가’는 그저 ‘한가롭게 쉬는 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어딜 가야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공간이동이 아니라 사실 마음자리를 이동해야 가능한 게 휴가다. 휴가 ‘다녀와서’ 정작 집에 들어서야 비로소 편한 잠을 청하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휴가는 ‘일’의 연장이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쉬는 일’을 길게 마치고서야 안타깝게 짧은 휴식을 취한다.


이 한가로운 시간을 성경은 ‘안식’(安息)이라 불렀다. 편안하게 쉰다는 말이다. 한 주일에 한 번 안식을 지내고, 7년마다 안식년을 지내고, 50년 되는 해에 해방의 기쁨을 맛보는 ‘희년’을 지냈다. 이 특별한 시간은 “일에서 손을 놓는” 시간이다. 특별히 짐승들과 노예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주어진 아주 짧거나 다소 긴 해방절이다. 프랑스 철학자이며 가톨릭신비주의자로 알려진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는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을 보면서 “휴가 나온 병사들 같았다”고 했다.


생전에 시몬 베유의 관심은 늘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 그는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자본주의 체제와 질서에 항거하며 가련한 노동자의 벗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동세계에 깊이 영혼이 스며들면서, 급기야 자동차 공장 절단공으로 일하게 된다. <노동일기>에는 노동자 시몬 베유가 현장에서 몸으로 경험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그가 경험한 공장은 지옥과 다르지 않았고, 그 안에서 임금 노동자들은 ‘노예’였다. 그들이 ‘노예 아님’을 경험하고, 지옥 바깥을 경험하는 순간은 ‘파업’ 기간이었다. 그들은 파업을 통해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녀들은 문을 지키는 노동자가 웃으면서 공장에 들어가게 한다고 즐거워했다. 또 미소와 정겨운 인사말에 대해서도 즐거워했다. 기계에 달라붙어 일할 때면 그토록 고독감이 느껴지던 바로 그 공장에서 그녀들은 우애를 느낄 것이다! 기계에 매여 꼼짝 못하던 작업장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그룹을 조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새참도 먹을 수 있는 즐거움. 자기 몸을 굽히게 하는 냉혹한 궁핍의 상징인 기계의 견딜 수 없는 소음 대신에 샹송과 웃음소리를 듣는 즐거움.


노동자들은 이제 그토록 오랫동안 생존수단을 제공하던 기계 사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누빌 수 있는 것이다. 기계는 더 이상 손가락을 자르지 않으며 고통을 주지 않는다. 아무 말 없는 기계 속에서 인간생활의 리듬에 따를 뿐 타임-레코더의 리듬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기쁨.


물론 며칠 후면 다시 가혹한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런 것에 걱정하지 않으며 마치 전쟁 중의 휴가병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육중한 기계에 대해 침묵이나 속박, 복종과는 다른 추억을 갖게 될 것이다. 자부심을 갖게 되고, 모든 금속에 대해 약간의 인간적 온기를 남겨주는 그러한 추억말이다.”


시몬 베유는 이렇게 공장이 즐거운 곳, 육체가 노동으로 피로하더라도 영혼이 기쁨을 맛보고 기쁨을 양식으로 삼는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업이 ‘휴가’라면, 휴가는 제 주변을 평소 누리지 못하던 기쁨의 공간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작업의 롤로코스트에서 잠시 내려, 동료에게서 우정을 발견하고, 가족에게 사랑을 발견하고, 다른 모든 피조물을 맑고 고운 눈으로 자세히 보고 쓰다듬는 시간이 휴가가 될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3년 교황으로 즉위하고서 단 한 번도 공식적인 휴가를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본래 역대 교황들은 지난 400년 동안 8월 한 달 동안 40℃에 이르는 로마의 폭염을 피해 로마외곽의 여름별장인 카스텔 간돌포에서 휴가를 지내곤 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 별장을 박물관으로 꾸며서 대중에게 개방하고 본인은 ‘성 마르타의 집’에서 휴가를 보낸다. 성 마르타의 집은 교황청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인데, 프란치스코 교종은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교황궁이 아닌 이곳에 머물고 있다.


예전에 언론에서 ‘교황의 휴가’를 소개한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휴가 기간 동안 평소보다 다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알람시계를 평소 기상 시간인 4시 45분보다 조금 더 늦게 맞춰두고, 미사도 가까운 친구와 직원들을 위해서만 집전한다. 대중 연설과 회의 일정도 줄인다. 교황은 ‘휴가를 보내기는 하지만 그것은 나의 처소에서다’라며 ‘조금 더 자고, 좋아하는 글을 읽고, 음악을 듣고, 더 많이 기도한다. 이러한 것들이 나를 평화롭게 한다’고 말했다.” (<연합신문> 2017.8.1.)


프란치스코 교종이 휴가기간에 ‘성 마르타의 집’을 떠난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2014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교종은 당신의 8월 휴가기간을 이용했다. 4박 5일 일정으로 바하마로 놀러가지 않고, 한국에 온 첫날 공항에 나온 세월호 참사 유족 4명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그는 리무진이 아닌 한국산 중소형차 쏘울을 타고 다녔으며, 청와대 공식 환영식에서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의의 결과’”임을 강조하였다.


한국을 떠나던 날 오전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을 향해 “죄지은 형제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했다. 그리고 바티칸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누군가 정치적 중립을 위해 세월호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교종은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명동성당에서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치욕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휴가’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휴가란 일을 멈추고 ‘나는 누구인지?’ 묻는 행위이며,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분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존엄성을 잃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성찰하는 시간이다. 휴가란 ‘시간을 소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시간을 더 효과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광고지를 탐색하는 시간이 아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나는 누구인지’ 살피기 위해 순례를 떠나거나 피정에 들어간다. 고요한 곳에 머물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때로는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있을 자유를 얻는다. 내 영혼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시간이 ‘휴가’다. 어떤 이들은 보육원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짜장면을 해주고, 어떤 이들은 요양원에 찾아가 어르신들 머리카락을 다듬어 준다. 휴가란 결국 익숙한 일상을 떠나 또 다른 일상을 사는 시간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을 잠시 접어두고, 거룩함의 원천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한상봉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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