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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하늘에 쌓은 보물은 ‘공감’과 ‘위안’이었습니다”
  • 이기우
  • 등록 2019-06-21 15: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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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 2코린 11,18.21ㄷ-30; 마태 6,19-23



하늘, 인간 모두가 자기 마음에 모시고 있는 하느님


이즈음 계속해서 산상설교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면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훔쳐 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물을 어떻게 하늘에 쌓을 것인가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동안 로마 제국의 식민통치가 구조적으로 억압과 착취의 폭력을 백성 전체에게 가하고 있었고, 이에 기생하던 사두가이들도 성전 권력을 행사하면서 백성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여 속죄하는 길을 독점하고 있었으며, 로마의 식민통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바리사이들도 율법의 권위를 독점하면서 편협한 이데올로기로 백성을 정신적으로 옭죄고 있었습니다. 


갈릴래아를 기반으로 생겨난 혁명당원들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로마에 대항해서 독립을 쟁취하려고 세력을 규합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일반 백성들은 여러 겹으로 억누르는 폭력, 즉 식민통치의 군사적 강제력과 성전의 부패한 종교적 제사와 율법의 독선적 권위에다가 혁명세력에 동조하도록 강요하는 뒤숭숭한 분위기 탓에 시달리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렇듯 여러 겹의 두텁고도 사악한 압력이 짓누르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을 복음선포로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하늘은 낮에 구름이 흘러 다니고 밤에 별이 빛나는 그런 창공이 아니었고, 인간 모두가 자기 마음에 모시고 있는 하느님이셨습니다. 그 하느님의 힘이 우리가 죽은 다음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부터 삶의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여러 기적 사건을 일으키심으로써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들을 목격하고 놀라마지않는 군중에게 하느님의 힘과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라고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포함한 산상설교의 말씀도 그렇게 해서 나온 가르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쌓으신 보물은 첫째가 공감과 위안이었습니다. 


질병이나 장애나 마귀들려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가신 그분은 그로 인해 그들이 받고 있던 고통에 깊이 공감하시며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이 공감과 위안의 사도직은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로 계승하고 있습니다만, 그 핵심이 되는 공감능력과 위안노력이 빠진 채로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부활과 성탄을 앞두고 실시되는 판공성사가 문제입니다.


둘째는 무시와 배척, 중상모략과 방해책동 등 온갖 악행에 대항해서 분명한 선의 방식으로 철저하게 맞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악에 대해서 실천하신 저항의 선행 투쟁을 사도 바오로도 계승했습니다. 오늘 독서에 의하면, 그는 복음을 선포하고 공동체를 건설하느라 먼 거리를 여행하면서 엄청난 희생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 먼 거리를 걸어 다녀야 했던 수고는 기본이고, 옥살이에다 매질도 당하면서 죽을 뻔한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습니다. 그가 회상하는 위험만 해도,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나 광야에서나 바다에서 겪어야 했던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 등 많았습니다. 


위험이 지나가도 평안한 처지가 찾아오지 않았고,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여기서 밤샘은 천막 만드는 노동을 하면서 해야 했을 것이고,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결식과 추위와 헐벗음은 천막 노동에도 불구하고 생계비를 조달할 수 없어서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건설해 놓은 공동체들 안에서 벌어지는 내분과 갈등, 냉담하는 교우들과 이단에 빠져 넘어간 교우들에 대한 걱정이 날마다 가슴을 짓누른다고 사도 바오로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교와 사도직을 행하는 활동에 있어서 가히 교과서적인 봉헌입니다.


세 번째 보물은 이 같은 상황들 속에서 말씀을 선포하여 하느님을 현존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이 지옥에서처럼 겪고 있던 고통에 대해서 천국을 선포하는 한편, 권력이나 돈이나 권위를 독점하고 있으면서 폭력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에 대항해서 희생과 선행을 하느라고 지치고 실망한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앞서 언급한 수고와 고생 탓으로 약해졌던 일이 많았지만 그 약함 속에서 하느님 선의 강함이 드러남을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사람들로부터는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셔야 했지만 하느님께 의탁하며 희망을 두고 기쁨을 잃지 않으심으로써 당신의 신앙을 증거하셨고, 그 신앙 위에서 확고부동한 권위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에는 힘이 있었고, 제자들을 비롯하여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믿음을 전해 주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으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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