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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주교님, 영화 <말모이> 보셨는지요? - 바람소리 23. 사회적, 종교적 괴리가 너무 큽니다
  • 김유철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1-15 15:19:52
  • 수정 2019-01-15 15: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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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부끄러웠던 천주교인


주교님이 아시다시피 올해는 3·1독립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사회 곳곳에서 당시와 현재의 상황을 재조명하는 일들이 준비되고 있고 제주교구는 새해 첫 날 ‘제주교구 3·1운동 100주년 기념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했습니다. 뜻 깊은 일입니다. 그런가하면 이미 5개종단의 평신도가 주축이 된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도 활동 중에 있기도 합니다.


종교인들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문화예술계 역시 올해의 의미를 특별히 여기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새해 들머리에 개봉한 영화 <말모이>(엄유나 감독)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원래 <말모이>는 최초의 조선어사전 이름이기도 합니다.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선각자들이 1911년부터 우리말 사전을 편찬준비 하였지만 주시경 선생이 돌아가시고 〈말모이〉 편찬은 거의 완성 단계에서 중단되어 해방 전까지 책으로 발간되지 못했습니다. 



영화 <말모이>는 1942년 이후 일제의 조선민족정신 말살 정책의 하나로서 조선어학회 회원 등을 검거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왜냐고요? 2008년 해방절에 발간한 저의 졸저 「깨물지 못한 혀」(우리신학연구소)에 인용한 다음 글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국민총력-대망의 징병제


▲ 경향잡지 1943년 2월호


“… 이렇게 제국 군인이 되는 것은 그 광영도 크지만 그 책임도 또한 큰 것이니 반도동포는 이 광영, 이 책임을 잘 받아 이행하기 위하여 이에 적응한 준비를 게을리 말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정신이니 황국을 위하는 정신과 내선일체의 정신을 더욱 철저하게 가져 실현하기로 힘쓸 것이오, 국어를 모르는 청년들은 하루바삐 국어에 달통하도록 힘써 응소된 다음에 여러 가지 불편이 없도록 할 것이며 내지군인들의 장점을 지금부터라도 배우기로 힘쓸지니 서로 일치단결하는 마음과 자기가 맡은 책임은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수행하고야마는 그 견고한 책임 관념과 아무리 어렵고 괴로운 일을 당할지라도 실망낙담 하는 일 없이 꾸준히 끝까지 최후의 한 방울 피까지 갈진히 하려는 백전불굴의 정신 등은 황군이 세계에 자랑하는 바이다.… ”(「경향잡지」, 1943년 2월호, 1쪽)


당시 경성교구장 岡本鐵治(오카모토 가네하루) 감목이 감준 했다고 명시한 조선천주교회의 「경향잡지」가 ‘국어를 모르는 청년들은 하루바삐 국어에 달통하도록’이라고 했을 때 ‘국어’는 당연히 일본어였지요. 천주교회가 징병대상인 청년들을 재촉 혹은 닥달과 선동하던 시기인 1943년 4월 1일까지 조선말 사전 편찬을 하던 관련자는 ‘모두 33명이 검거되어 고문을 당했다. 사건을 취조한 홍원경찰서에서는 33명 모두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로 기소했다. 기소 후 형무소에 수감된 자 중 2명은 옥사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현재의 천주교인이 해방 전에 벌어진 일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민족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마음은 평신도나 주교님이나 다르지 않겠지요.


사회적, 종교적 괴리가 너무 큽니다.


주교회의 홈페이지에는 한국교회의 역사 중 ‘식민지 시대의 교회’를 설명하면서 이런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한일 합방 당시 조선에 나와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은 광대한 식민지를 경영하던 제국주의 국가 출신이다. 따라서 그들은 제국주의적 불평등 조약의 부당성을 알지 못하였다. 오히려 식민지 지배 권력을 정당한 권력으로 인정하고 있어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지배를 정당한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교회는 식민지적 사회 구조의 일부로 자리잡게 되었다.”


▲ (자료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러나 불행하게도 위에 언급한 1943년 2월호에 나온 ‘대망의 징병제’ 글이 실린 것은 아시다시피 岡本鐵治(오카모토 가네하루) 감목, 즉 조선인 노기남 주교가 경성교구장인 시절입니다. 그러니까 식민시절의 잘못을 제국주의 출신인 외국인 선교사들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어떠한 경우도 우리는 면피의 대상이 아닙니다. 허나 지금도 교회 곳곳에는 노기남 주교의 이름이 명명된 건물들이 있지만 그 분은 사회에서는 친일인명사전에 거명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기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다른 한 분에 대해서 시복시성 운운하는 일도 있는 것을 보면 사회적, 종교적 괴리가 너무 큽니다. 그것은 민족 모두의 불행입니다. 그저 “바담 풍”이라고 홀로 외쳐대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 주 다시 뵙지요.


한발 더 들어가서 말씀드리면 당시 조선천주교회는 이른바 ‘징병제’을 기념함과 동시 황군의 무운 장구를 기원하는 ‘증병기념 미사성제’를 경성 종현대성당과 각 성당에서 거행했습니다.(위 책, 1943년 8월호) 또 일반인에게 징병의 취지를 철저히 인식시키기 위해 노기남 주교 순시 때 남상철 국민총력 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장은 장연·신천·제천 등지에서 강연을 하고, 특별지원병의 취지를 인식시키고자 신인식 신부는 전주와 광주에서 각각 열변을 토하여 교내 교외의 일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위 책, 1943년 12월호)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연 각 성당의 미사와 열변을 토한 강의는 조선어로? 아니면 일본어로? 그러니 영화 <말모이>를 보면서 괜스레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치욕적인 일본식민지 시절을 생각하니 교회가 말하는 ‘순교’라는 말이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한국천주교회 초기 역사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순교’는 우리 스스로가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2000년 대림 첫 주일에 주교회의가 발표한 <쇄신과 화해> 2항에서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속에 당시의 모든 것을 넣으려 했습니다. 아니지요. 그러기에는 구체적인 잘못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제대로 내릴 수 없고 더욱이 치료는 아예 불가능합니다. 


주교님 틈나실 때 편한 옷으로 입으시고 영화 <말모이> 보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 다시 뵙지요.



[필진정보]
김유철 (스테파노) :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이며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삶·예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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