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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더불어 사는 희망은 언제나 유효하다. - 바람소리 16. 시인의 눈으로 본 아프리카 이야기 ③
  • 김유철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8-11-27 14:59:15
  • 수정 2018-12-11 15: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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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8월 백두산 천지를 올라 삼배 올렸다. ⓒ 김유철


여행은 생의 선물이다.


이제 아프리카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해외여행을 자주하는 편은 아니지만 조금은 다른 길을 경험하고 다니는 편인가? 라고 자문하며 자위하곤 한다. 시인의 얇은 주머니를 감안해서 해외여행을 염두에 두고 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버켓 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때때로 기회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꿈꾸면 이뤄지듯 시나브로 그런 여행이 찾아오기도 한다. 여행이 단순히 시간적, 물질적 여유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닌 듯싶다. 분명 여행은 생의 선물보따리를 하릴없이 받는 일이고 두려움 없이 푸는 일이다.


▲ 2011년 7월 드디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스바시바! ⓒ 김유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러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서던 생각이 난다. 바다 같은 호수 바이칼에서 한민족의 시원이라고 하는 알흔섬의 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어느 해는 한여름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시안에서 티벳으로 가던 길에서 난데없는 폭설을 맛보기도 했고, 독립영화의 시민제작자가 되어 모스크바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일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여행도 인생의 한 장면 감격을 넘지는 못한다. 그것은 붉은 금지 단어였던 ‘평양’에서 ‘조선민항’ 비행기를 타고 개마고원 삼지연공항에 내린 일이다. 그날 필자는 ‘백두산 천지’를 올라가 삼배를 올렸다. 올해 남북정상회담으로 문재인대통령도 그 루트를 갔지만 필자가 경험으로 치면 선배다. ㅎ.ㅎ. 


빅폴 Big Fall의 입구는 멀었다.


▲ 강행군 탓인지 타이어 펑크로 위험천만하기도 했다. ⓒ 김유철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아프리카 여행은 멀고 험한 길이다. 어찌 보면 그동안의 어떤 여행보다 가장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단한 일정이었다. 이번 방문의 주목적이었던 말라위 망고치 데이케어센터 모니터링을 마치고 일행들과 향한 곳은 말라위 국경을 넘어 잠비아로 들어가는 빅토리아 폭포였다. SUV차량으로 무려 왕복 3000여KM를 오가야한다니 믿어지기는 할까? 부산에서 신의주까지가 850여km이니 그 거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마지막까지 일행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무엇보다 길과 사람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말라위에 거주하는 한인과 현지인 한 사람이 동행했지만 그들도 빅토리아 폭포는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별 도움이 안됐다. 그러나 오래전 리빙스턴이란 사람도 그곳을 갔으니 의지의 한국인들도 용기를 내어 결론은 “가자!”였다.


▲ 국경을 넘기 위한 발급증에는 VIP라고 되어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 김유철


말라위 국경을 넘기 전 먼저 차량과 운전자를 인터폴에 등록하고 통행증을 발급받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막상 국경 검문소에 도착해서는 서류미비로 하룻밤을 그곳에서 보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전형적인 오리무중 행정이었고 이른바 ‘언더 머니’의 위세가 앞서는 현장이었다. 이 나라가 국민들을 위해 넘어가야 할 가장 큰 산은 관료들의 부정부패였다. 하기는 한국에서 운전을 하면서 교통경찰에게 면허증과 돈을 함께 주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 나라의 갈 길이 멀어 보임과 동시에 희망의 싹도 보였다. 어둠이 짙으면 밝음도 숨어 있는 것 아닌가. 단지 이 어둠이 어둠의 끝이기를 바랄 뿐이다.


빅폴의 물보라를 만나다.


▲ 건기를 맞은 빅토리아 폭포였다. ⓒ 김유철


스코틀랜드 태생의 리빙스턴은 의사이며 선교사였지만 막상 그를 만나 것은 탐험가로 소개된 위인전에서였다. 사실 ‘빅폴’은 태초부터 있었고 잠베지강 유역에 살던 아프리카인들은 ‘천둥치는 연기’로 불렀지만 유럽인의 눈으로는 1855년 거대한 폭포를 처음 발견하고 당시 영국 여왕의 이름인 빅토리아 폭포라고 명명했다. 폭과 깊이가 미국 나이아가라의 2배 이상이고 최대 108m의 낙차에서 천둥 같은 소리와 물보라에 무지개가 비치기도 한다. 1989년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명소다.


▲ 메인 폭포의 물보라는 엄청났다. ⓒ 김유철


일행이 도착한 10월 말은 그곳의 건기에 해당되어서 절벽을 타고 내리는 물줄기는 적었지만 협곡과 협곡 사이의 메인(Main)폭포의 물줄기가 일으키는 물보라는 쉽사리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듯 한 태세였다. 그저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 두 손을 모았다. 협곡 건너편 짐바브웨의 용감한 사람들은 그곳에 번지점프대를 만들었고 폭포 주변을 트레킹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아주 힘들게 온 빅토리아 폭포였지만 “이만하면 됐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충분했다. 이제는 밤새 그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다. 그것도 운전대가 우리와는 반대방향인 차를 교대로 밤새 운전하면서 말이다. “오, 마이 갓!”


‘한 번 더’ 살피고 ‘조금 더’ 나누는 길


▲ 성 아우구스틴 성당 벽화 속 인물들이 현지인들의 모습이라 더욱 반가웠다. ⓒ 김유철


여행기간동안 두 번의 주일을 맞이했고 한 번은 현지의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망고치에 있는 성 모니카 중학교와 나란히 위치한 성 아우구스틴 성당에서였다. 주일 아침 8시 미사가 주일학교 미사를 겸한 것인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다수 참석했다. ‘아주’ 깨끗한 옷을 입고 온 아이들은 낯선 아시아인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지만 이내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 선교사가 아닌 말라위 방인 사제는 젊었고 아주 열정적으로 자국어인 치체와어로 강론했고, 친절하게도 방문객들을 위해 영어로 다시 덧붙였다. 강론시간에 교리를 가르치는 듯 아이들과 사제는 문답을 주고받았고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젊은 사제와 아이들의 숨소리가 고마웠다.


말라위가 물질적으로 많은 것이 부족한 나라임에는 틀림없지만 더불어 사는 희망은 언제나 유효하며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길이 처음부터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되듯이 어떤 결과를 예상하기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서고 무엇이 부족한지, 그것을 채우려면 무엇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한 번 더’ 살피고, ‘조금 더’ 나누는 길이 지름길일 것이다. 압축성장은 아프리카에서는 적용될 수 없으며, 적용해서도 안 되는 방법이다. 묻지마 개발이나 관광 특수라는 것도 이곳에서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수많은 선교단체와 NGO단체가 그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일을 하고 있다. 존경과 고마움을 표한다. 멀고 먼 아프리카를 떠나왔지만 아직도 그들의 맨발과 선한 미소가 눈에 선하다.


▲ 아이들의 맨발과 선한 미소를 잊지 않는다. ⓒ 김유철



[필진정보]
김유철 (스테파노) :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이며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삶·예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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