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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쓸쓸함에 대해 (지성용) 성과 젠더 그리고 교회 지성용 2020-09-15 14: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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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힘과 변화를 경험한다.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랑은 지금까지 이루며 살아온 좁은 공간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열어주고,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던 것을 향해 자신의 삶을 열어가도록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가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도전과 성장을 이루어 낸다. 청소년기, 중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사랑’을 추구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어 한다. 사랑은 혼인을 통해 ‘성할 때나, 병들 때나 변함없이’ 라는 서약으로 사랑하는 이가 아프고 약해질 때도, 매력을 잃고 늙어 가도 함께 하며 살아간다. 사랑은 사람을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고, 죄와 죄의식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성숙한 사람은 ‘사랑하는 상태’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 사랑의 혼돈을 피하려고 한다. 사랑의 혼돈은 일상을 파괴하고 주변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속적인 사랑을 동경하는 마음에는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 안전한 미래를 동경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그리고 킨제이 보고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서울 박원순 시장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성의 문제에 대한 논란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피해자를 대신해 기자회견을 했던 여성단체들과 변호사가 나서서 몇 번에 걸친 쪼개기 기자회견에 증거미비 논란이 더해지면서 또 다른 차원의 논란이 시작됐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도 2차 가해’, ‘침묵해도 2차 가해’라고 하면서 건강하게 열릴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원천봉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사회는 성에 대해 공공연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금기였다. 성은 부끄러운 것, 밝은 데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엄숙함에 비해 기성세대는 노래방, 키스방, 불법 안마방, 그리고 마침내는 n번방으로까지 달려갔다. 비뚤어지고 왜곡된 성관념과 미숙한 성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아이들의 성의식은 성을 범죄와 악의 도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 무기질 우주 질서의 단백질 표현인 생물은 적어도 40억년 오랜 진화를 거쳐 어머니 뱃속의 10개월로 그 진화는 축약되었다. 거기에는 남녀의 성행위가 있었고, 그것은 적어도 하느님의 창조에 협력하는 인간의 고매한 삶의 한 과정이 되었다. 난자와 정자의 만남은 물질 안에 생명을 가두고 배아로부터 시작된 생명은 우주의 의식을 자아냈다. 인간은 우주의 영혼이 되었다. 그들은 문화와 문명을 일구었다. 


고대 희랍어의 ‘자궁(hystera)’은 인간의 불안정한 감정, 예측할 수 없는 행동, 신경증적 증상을 일컫는 ‘히스테리(hysteria)’의 어원이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불안과 비정상적인 이상행동은 자궁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인식의 반영이었다. 1900년대 초반 프로이트의 정신발달 이론은 성적욕망이 인간의 근본적 본능 중 하나이고, 성욕의 무의식적 왜곡과 억압이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의 원인이라는 추론을 던져주며 성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1940년대 후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섹스가 인간의 삶과 정신세계에 중요한 주제임을 공론화한 연구 결과가 세상에 등장한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의 동물학과 교수인 킨제이(1984-1956)는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전국 약 1만여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했다. 남성 5,300명의 조사를 바탕으로 “남성의 성생활” 보고서가 출간되었고, 5년 후 1953년 5,940명의 여성을 조사해서 “여성의 성생활” 보고서를 출간함으로써 ‘킨제이 보고서’는 완성되었다. 


보고서는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동성애와 자위에 대한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의 동성애는 정상이 아니었고 일부 정신병적, 왜곡된 성행위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보고서에서 동성애자는 3% 정도이며, 37%의 남성들이 살면서 한 번은 오르가즘을 동반한 ‘동성애’를 경험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40%에 육박하는 남성들이 동성애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남성의 70%가 사창가에 간 경험이 있고, 15%는 반복적으로 행동한다고 응답했다. 


여성의 경우 62%가 자위행위를 하고, 50%가 혼전에 성교를 경험했으며 혼인한 여성들의 26%가 혼외정사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전까지 여성은 성욕에 있어 수동적이고 금욕적이라 생각했는데 여성도 남성과 다르지 않게 섹스를 즐기고 오르가즘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기존의 보수적인 미국 사회 성관념은 무너졌다. 미국에서 25만부가 판매되었고, 전 세계 12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동성애, 혼외정사, 사창가, 자위행위는 해서는 안 되는 금기로 간주하고 있었지만 실제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보고서는 이후 거센 후폭풍을 맞게 되었다. 이미 70년 전 미국에서 성은 금기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영역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이다. 


일반적으로 ‘성적 행동’과 ‘사랑’은 동시에 일어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다른 현상이므로 대개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것으로 발생한다. 성행위 그 자체는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스캇 팩은 “사랑에 빠져 성행위를 할 때 수반되는 자아 영역의 일시적인 붕괴는 다른 사람과 함께 참사랑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시발점일 수는 있으나 도착점도 목표점도 아니고 완성은 더더욱 아니다. 사랑은 지난한 과정이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적 활력을 억압하는 삶의 태도나 영성’은 몸 안에 상존하는 강한 욕구가 언제 분출되거나 통제되지 못해 타인에게 ‘희롱’이나 ‘추행’ 그리고 ‘폭력’을 일으킬지 몰라 어둠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멍에를 쓰고 두려움과 범죄의 가능성을 간직한 채 도심을 활보하는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버렸다. 성적 욕구는 시작부터 극복되고 제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리비도(id)는 에고(Ego)를 자아낸다. 인간의 초자아(Super ego)와 리비도의 갈등과 대립은 자아에게 끊임없는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며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의존적이며 미성숙한 인간을 만들어 낸다. 이는 삶의 태도와 영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진정으로 살아가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가로막는다. 


정의를 위해 젊은 날을 보냈던 시민사회 운동가들의 ‘초자아’에는 바른 것, 옳은 것, 정의로운 것, 선함, 빛 등의 고귀한 가치가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엄숙하고 진지한 삶의 태도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리비도’는 과도한 정의와 도덕에 갇혀 억압되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져본다. 그들은 사랑과 성에 무지했던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이후 우리사회는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라는 말로 성을 더 분열시켰고, ‘한남충’ ‘메갈리아’라는 말까지 등장하면서 ‘성대결구도’가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중세의 죄는 2020년에도 여전히 죄인가?


사제들을 양성하는 가톨릭대학교 신학과에서 ‘성과 독신’이라는 과목을 강의했다. 젊은 신학생들의 고해와 상담의 중요한 지점은 ‘자위행위’에 대한 문제였다. 20대의 젊은 신학생들에게 금욕과 수련을 강의하고 가르친다고 해서 그들 안의 성적활력을 억압하거나 억누를 수는 없다. 가톨릭교회에서 자위행위는 대죄다. 자위행위가 죄로 규정되고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젊은 성직지망생들이나 수련자들의 초자아에 ‘자위행위는 대죄’라는 죄의식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인간본성의 왜곡은 그들의 활력을 억누르고 변형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통제범위 내에서는 자기관리를 엄격하게 하지만 통제가 벗어난 지역과 시간, 범위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것이 어디 신학생들만의 문제인가? 사제직을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성관련 스캔들에 휘말린다. 


사실 자위가 이렇듯 심각한 죄가 되는 이유는 생명의 파괴, 살인과 다르지 않다는 신학 때문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안에서 자위는 대죄로 규정되었는데 그의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에 기반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의 기원은 남자의 씨앗(정자)만이 중요했다. 남자들의 정자야 육안으로 관찰되지만 여성 체내의 난자는 당시의 과학기술로 관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여자의 생명에의 기여는 그저 뿌린 씨를 받아 키우는 땅으로 비유되곤 했다. 이러한 당시 자연과학의 수준은 결국 남성의 정자는 생명의 씨앗이고 그 씨앗에서 머리통과 몸통, 팔 다리가 나온다 생각했으니 그런 씨앗을 무의미하게 방출하는 행위는 생명을 죽이는 살인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자위는 그런 의미에서 살인이었다. 


그러나 현대과학과 의학 그리고 2020년 가톨릭교회의 생명윤리는 생명의 시작을 정자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생물학에서는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난자가 만나 수정되어 대략 3주에서 8주까지의 시기를 ‘배아’라고 한다. 이 배아기에 인체의 주요한 기관들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이 시기가 끝나면 이미 사람의 특징을 갖춘다고 볼 수 있다. ‘배아가 사람인가, 세포인가?’에 대한 논란은 정부와 가톨릭교회의 입장이 서로 상이하다. 2005년 1월부터 의료법 제 17조 ‘불임치료법 및 피임기술의 개발을 위한 연구’는 잉여배아에 한하여 연구를 허용하고 있으며 같은 법 22조에서는 “희귀 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목적 외에는 체세포 이식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여 사실상 치료목적으로는 체세포복제 배아연구도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윤리판단이나 생명윤리의 논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사실, ‘남성의 정자만으로는 하나의 온전한 생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자의 방출행위가 살인은 아닐 것이고 대죄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고 말했다가 종교재판에 끌려가 목숨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말해서 잡혀가 고문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때는 불에 태워 죽일 대죄였지만 오늘날 지구가 돈다는 생각이나 지식은 죽을만한 일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다. 죄가 아니라 과학의 정설이 되었다.


성과 젠더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하는 섹스(Sex)와는 별개로, 젠더(gender)는 사회적으로 정의된 성을 뜻한다. 즉, 그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통념으로 정의된 개념이 젠더다. 이반 일리치는 “젠더는 두 다리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행동거지마다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회적인 성 역할을 우리는 젠더라 소환했다. 젠더란 원래 언어학에서 문법성(grammatical gender)을 가리키는 용어로, 그 이외엔 다른 용법이 없는 죽은 말이었다. 1955년에 성역할(gender role)이라는 말을 고안한 존 머니가 젠더라는 말에 새로운 용법을 부여하며 생물학적 요소인 성과 구분되는 ‘역할로서의 성별’로 젠더 개념을 소환했다. 원래 간성(間性) 연구자였던 머니는 성별 구분 및 성역할이 사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사회적 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그것을 ‘젠더’라고 정의했다. 


보부아르가 1949년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말한 그 “만들어진 성”을 지칭할 언어가 바로 ‘젠더’였다. ‘제3의 성’이라는 의미로서의 젠더 개념은 성소수자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논의되었다. 7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에 여성학계에서는 성(sex)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모두 젠더(gender)로 대체되었다. 성(sex)과 성별(gender)은 다른 것이고, 성별은 역할(role)에 지나지 않았다는 여성학자들의 주장은 생물학적 논의를 본격화시키기도 했다. 곧, 기존의 성(sex) 개념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구분만 있었으나 이후 발달한 생물학 안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n개의 성이 존재한다’는 합리적인 연구들이 등장했다. 즉 DNA 구조 안에 남녀의 성별을 구분하는 유전자는 극히 일부의 것이고 그 안에 무수한 스팩트럼의 다양한 성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성 같은 남성, 남성 같은 여성, 아주 많이 남성 같은 여성, 아주 많이 여성 같은 남성이 현실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성 담론 구조나 젠더 문제에 대한 고민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젠더 문제는 단순히 성범죄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시대, 성에 의한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존엄을 우리사회가 어느 정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이고 있느냐라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성폭력상담’이란 말은 현상에 대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그것은 문제의 근본이나 본질로 다가서기 어려운 ‘이름붙이기’다. 성폭력이 발생해야 상담을 한다. 그 이전에 할 것은 없는가? 범죄가 발생되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은 없는가를 물어야 한다. 성과 성역할에 대한 구분과 성행위와 사랑에 대한 혼란, 성에 대한 금기와 제도적 통제는 성에 대한 긴장과 해소되지 않는 내적갈등을 심화시켜 우리사회를 온통 성범죄로 물들게 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독한 성범죄를 기억해보자! 제주지검장 김**씨가 벌인 길 위에서의 난감한 행동을 기억하는가? 김**라는 전직 법무부 관료가 등장하는 낯 뜨거운 증거 화면을 보며, ‘그가, 그가 아니다’라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우리는 어떤 담론을 했었던가. 장자연이라는 유망한 여배우의 삶을 온통 짓밟았던 대기업언론사 사주와 그의 자녀가 저지른 범죄는 어떻게 된 것인가? 국내최고의 기업 S사의 회장이 하룻밤 화대로 수백만 원을 수십 명의 여자에게 나누어 주는 성매매 영상을 지켜보고도 한마디 못했던 대한민국 사회의 성담론 무능력이, 어찌 ‘정의’라는 이름으로 걸어갔던 만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가혹하게 굴고 있는가?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대해 무성한 추측과 말들이 오간다. ‘아무리 그래도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 ‘살아서 당당히 해명하고 잘못이 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라고 좌우를 넘어 젠더문제의 민감함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많은 정치인들과 사회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시대 성에 관련한 문제는 논란의 시작부터 이미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성과 젠더의 문제는 대립과 투쟁, 갈등과 반목의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공존과 협력, 이해와 관용, 나눔과 배려의 문제이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고귀함과 본래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것이 성과 젠더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 어느 새 우리 주변의 젠더, 페미니즘은 너무나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다가온다. 무슨 말이나 담론이 어렵다. 2차 가해라는 낙인을 찍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벌어지는 현상들에 일희일비 하지 말자. 꿰뚫어 보고,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식별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철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석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어야 한다. 21세기 새로운 신학은 그러한 철학에 기반하여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는, 희망을 줄 수 있는 능력을 탑재해야 한다. 


⑴ M. 스캇팩, 『아직도 가야할 길』, 열음사, 139. “성교, 특히 오르가즘(자위행위를 포함한)의 경험은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자아영역이 붕괴되고 황홀감을 준다(킨제이 보고서). 육체적 관계에서 우리가 절정에 도달했을 때에는 일시적으로 자아영역이 붕괴되기 때문에 우리는 애정이나 매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창녀에게도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자아영역을 되찾은 후에는 사랑, 애정과 같은 감정은 완전히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어떤 상대라도 오르가즘과 더불어 일어나는 자아영역의 붕괴는 똑같이 일어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공동선> 2020년 9, 10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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