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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스스로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사건과 신학]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과 희년법 최형묵 2020-02-20 15: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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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1216 부동산대책’입니다. - 편집자 주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회자한지 오래이다. 긴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건물 하나라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신을 믿는 것보다 자신의 삶의 안전보장을 위해 훨씬 좋다는 뜻일 것이다. 무신론자들의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말인 듯 보이지만, 교회 안에서도 그런 상식이 통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한 교우가 말한 적이 있다.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 신선하게 느껴진 것 가운데 하나가 교우들의 일상대화에서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가 일체 없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값이 올랐느니 내렸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거꾸로 전에 다닌 교회에서는 그것이 일상대화의 중요 주제가 가운데 하나였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거참,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우리가 암만 재산 소유권의 배타성이 용인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재산이 늘고 줄고 하는 이야기를 교회에서까지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까닭이 있을까.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희년의 정신에 대한 일말의 자각이라도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신앙 공동체 안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오히려 세태를 걱정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세태의 굴레에서 벗어나 모두가 더불어 살 것인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넘쳐나는데 말이다.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일찍이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성서의 요체를 그렇게 단언하였다. 그것을 집약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 희년법이다(레위기 25장). 여러 세세한 규정들 하나하나가 의미 있지만, 그 요체는 크게 인신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리고 토지와 집 등 재산이 그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그 정신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유산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희년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재산의 불평등으로 인신의 구속과 억압이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물려준 유산을 무분별하게 남용함으로써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 공생애 첫 일성으로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선포하고 있는 것(누가복음 4:19)도 그 정신을 새삼 환기하는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지향하는 구원의 구체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 정신에 비춰볼 때 오늘날 재산에 대해 배타적 소유권이 용인되고 있는 현실, 또 그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재산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은 그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 근대의 정치적 혁명 이후 소유권은 곧 자유권의 요체로 간주되어 왔다. 그것은 인신의 자유를 보장하는 물질적 기반으로서 재산이 임의로 타인에게 양도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토지와 주택 등 부동산이 자유롭게 매매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재산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은 심각한 문제들을 낳고 있다. 부동산이 불로소득의 원천이 되고 있고, 그로 인한 부의 불균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나아가 공공의 복리를 훼손하는 사태 또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현실이 그러한 만큼 재산에 대한 소유권은 사회적으로 규율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조항(제23조 2항)을 둔 것도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재산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재산권의 행사가 공공복리에 부합하도록 사회적으로 규율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지금 정부가 부동산 투기 과열을 막고, 그 부동산 소유 여부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저지하고자 정책을 실시하는 것도 그 취지를 따른 것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끊임없는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그 정책의 정당성은 충분하다고 하겠다.


교회는 성서가 가르쳐주고 있는 희년법의 정신을 오늘의 현실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고, 그 지혜를 세상에 나누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 스스로가 부동산을 재산증식 수단으로 삼고 있거나 불로소득으로 인한 혜택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면, 교회 스스로 반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교회 스스로 그 어떤 정의의 감각도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최형묵(NCCK 정의평화위원장ㆍ한국민중신학회장 / 기독교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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