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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구원·성취를 위해 필수적인 능력 [이신부의 세·빛] 선택과 식별에 관하여 이기우 2020-02-13 17: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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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간 목요일 (2020.2.13.) : 1열왕 11,4-13; 마르 7,24-30



오늘 독서에서는 솔로몬이 그동안 누린 영화에 도취하여 지혜의 눈이 멀어져서 우상숭배의 풍습을 허용했던 과오를 일깨워줍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혜를 신하들과 나누지 않은 과오라 할 것이며, 따라서 백성들 사이에서도 공정과 정의의 열매가 고루 나누어지도록 하지 못한 무능의 소치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의 힘을 받아서는 솔로몬 임금 개인에게만 머물고 신하들과는 나누기를 꺼려한 잘못의 당연한 결과이며, 그 지혜를 사회적 공정과 정의라는 열매로 열리게 해서 백성들과 나누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애당초 의도조차 하지 못한 무능함의 결과입니다. 지도자의 식별 능력이 그 해당 공동체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에서는 주로 갈릴래아 지방에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이스라엘보다 북쪽 해안에 위치한 이 티로 지역은 하느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아서 우상숭배가 창궐하던 땅이었는데, 걸어서 며칠씩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이 지역을 가신 걸 보면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을 알리시려고 의도적으로 가신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간청하는 그 여인의 청을 일단 사양하셨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딸의 상태가 어떤가 하고 보시려고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마귀들림은 영적 간섭 현상을 통해 주변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 어머니는 흔들림 없이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믿고 간청해 왔으므로, 예수님께서는 간단히 그 여인의 딸에게 들어온 마귀를 말씀 한 마디로 쫓아내 주셨습니다. 이제 그 여인은 자기 딸의 치유 사례를 들어 이웃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내게 될 것이고, 나중에 예수님께 몰려든 티로 지역 사람들은 그 결과로 오게 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렇듯 우상숭배에 찌들어 마귀에 들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는 영적인 식별과 구마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존과 구원 그리고 성취와 도움 등 온갖 선의 행로를 밟아나가기 위해서는 선택과 식별이 필수적입니다. 이 능력을 함양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가 어머니와 교사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와 한창 자랄 나이의 어린이에게는 무엇을 먹어야 하고 먹지 말아야 하는지 어머니가 분별해주어야 합니다. 이 무렵 길러진 입맛이 한평생 가지요. 신체적인 차원의 선택에 익숙해지고 나면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를 도와주는 존재가 각급 단위의 교사들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는 눈은 이때 길러지지요. 어린 존재에게 어머니의 역할이 절대적이듯이, 성장기 인간에게는 좋은 교사를 만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1960년대 가톨릭교회와 인류에게는 요한 23세가 그 두 가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가 신자들은 물론 인류에게도 어머니요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향으로 1961년에 회칙을 반포하여 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한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 발표했습니다. 그 지향의 흐름에 따라서 공의회도 소집되어 현대의 성령강림사건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공의회의 교회쇄신 여정에 따라서 현 교황 프란치스코도 교회의 향도요 인류의 길잡이로서 무엇을 희망해야 하고 어떤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지를 감지하여 식별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느라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은 우리가 간직해야 할 희망을 권유하는 메시지라면,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우리가 피해야 할 위험에 대한 메시지라 볼 수 있습니다. 


삶의 기간 동안 내내, 그리고 삶의 여러 차원에서 모두 이토록 선택하고 식별하며 분별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개인들도 필요하지만, 지도자들에게는 필수적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회적이고도 영적인 식별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께로부터 받아서, 남과 북의 온 겨레에게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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