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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시대, 세계관·존재관·신관도 바뀌어야 [이기상-신의 숨결] 우리 시대 하느님과의 소통법 ① 이기상 2020-01-20 14: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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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억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통합적 신관


‘하느님’ 또는 ‘신’ 개념은 문화권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특정 문화권의 신 개념을 기준 잣대로 사용해서 다른 문화권의 신 개념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권에 따른 신관의 차이는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삶의 공간과 역사적 배경, 즉 생활세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신관의 차이는 자연 속에서 나름의 세계를 형성해온 세계관의 차이에 기인하고, 그리고 이것은 존재관 또는 존재시각의 차이에서 유래한다.


같은 문화권이라 해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신관도 변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이 깨어나고 지식이 축적되고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자연에 대한 시각도 달라지고 신에 대한 개념도 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신관의 발달, 진화 또는 진보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문화권에 속한 민족, 더 나아가 인류의 발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개체 발생은 종족 발생을 반복한다. 신관에서의 종족 발생적 발달도 신관에 대한 개체 발생적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는 개체에서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서 종족에서의 발달과정을 역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가 속한 문화권의 신관 또는 신개념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해서는 안 된다. 지구촌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신관 또는 신개념에서도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신관에 대해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하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른 문화권의 신관 또는 신개념에서 배우고 취할 것이 있으며 배우고 취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사진출처=young diplomats)


지구촌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신에 대한 열린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구촌 시대’라는 말은 지구 위의 모든 인간이 ‘하나’의 지구에서 함께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지시하고 있다. 현대 인류가 닥치고 있는 위기에 우리는 지혜를 모아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큰 위기의 하나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허무는 생태계 파괴이고 다른 하나는 테러와 반테러로 얼룩진 극에 달한 [문명권의] 대립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로 76억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이 최대의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런 위기와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지혜와 통찰, 과학과 기술을 총동원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세계관, 존재관, 신관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그에 따라 인간관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 아니 우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에 놓여 있다. 


현대는 또한 문화의 세기라고도 불린다.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뒷자리를 차지하던 문화가 중요한 핵심 요소로 등장했다. 이제는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관용, 여유, 배려, 창의성, 독자성 등이 키워드로 대두되면서 예술과 종교가 인간의 문화적 삶을 각인하는 분야로 관심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아울러 문화의 다양성이 중요한 관심사로 부각된다. 생물종의 다양성이 지속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위한 필수조건이듯이 문화의 다양성이 평화로운 인류의 공존을 위한 기본조건이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전수되어 내려오는 수많은 문화자산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통합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문화의 세기가 요구하고 있는 문화적인 태도는 유연성 있는 통합적인 대처방식이다. 넓은 의미의 문화영역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 삶의 방식이 곧 문화다. 정치도 중요하고 경제도 중요하고, 과학과 기술도 중요하다. 거기에 덧붙여 철학, 예술, 종교도 중요하다. 문화적인 자세는 이러한 인간의 다양한 분야들을 어느 한 분야로 축소 또는 환원시켜서 획일화된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거부한다. 과거 ‘제일철학’의 자리에 이제 ‘통합학문’이 들어선다. 모든 개별적인 분야에서의 통합적인 시각과 그에 맞갖은 통합학문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이 모든 개별 분야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전체에 대해서도 통합적인 시각과 통합학문이 요구된다. 인간, 자연/우주, 신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과 통합학문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논의의 초점을 ‘신’에 맞추기로 한다.


동·서 통합적인 시각으로 하느님과 소통하는 길


달라진 시대, 달라진 세계에 사는 현대인에게는 그 이해의 지평에 맞갖은 신관 또는 신개념이 필요하다. 5천년 또는 3천년 전 인류가 갖고 있던 신관 또는 신개념이 현대인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렇다면 천년 전, 백년 전은 어떠한가? 각각의 문화권이 독자적으로 전수받아 발전시켜온 신개념에는 그 문화권의 독특함이 배어있다. 그 문화권의 세계관, 인간관, 존재관이 어우러져 그 나름의 독특한 신관을 만들었다. 18세기 이후 서로 다른 문화권이 만나며 교류하면서 ‘세계관’ 또는 ‘신관’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이 펼쳐진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서양의 세계관이 가장 강력한 세계관으로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기술과 과학을 앞세운 합리성 일변도의 서양 세계관이 서서히 그 독자적인 지배력을 상실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의 세계관들이 저마다의 유효성과 가치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격심한 문화의 충돌을 야기했고 새로운 양상의 문화전쟁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이 문화전쟁은 결국 근본에서 볼 때 ‘신’에 대한 신앙과 거기에 따른 가치관이 빚어낸 현대판 종교전쟁이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권에 다양한 신관이 있고 그에 따른 신앙과 가치관이 있음을 사실로 인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신에 대한 통합적인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이 논의는 열린 자세와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자기 문화권에서 전수받은 신관은 ― 하느님이 직접 전해준 것이기에 ― 절대적인 진리임을 전제로 해서는 열린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하느님이 직접 전해준 것이라 해도 유한하고 틀릴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알아듣고 전하는[옮겨 적는] 데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느님은 자신의 계시를 듣는 사람의 문화적·시대적 배경에 맞추어 그 사람의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문화적·시대적·언어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를 염두에 두고 신에 대한 논의를 펼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역사 속에서 역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전해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의 의식과 정신이 역사를 통해 발달해 왔다면 인간이 만나고 관계해온 하느님도 그 모습을 달리하며 발전되어 왔을 것이다.


우리는 현대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말 건네오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대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에서 자신을 알려오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찾으려 애써야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하느님은 특정 민족의 하느님일 뿐 아니라 모두의 하느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동서 통합적인 시각으로 우리가 사는 현대인 지구촌 시대, 지식정보화의 시대, 문화다양성의 시대에 하느님과 소통하는 길을 찾아보기로 한다. 


먼저 현대를 신이 떠나버린 칠흑 같은 어둠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기술의 굴레 속에 부품화의 길을 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외친 하이데거의 문제의식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본다. 하이데거는 로고스 중심, 이성 중심,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아울러 존재[자] 중심의 존재이해가 신이 있을 성스러움의 자리를 제거해서 신을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쫓아냈다고 말한다. 그래서 떠나버린 신을 다시 모셔오려면 무엇보다도 성스러움의 영역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스러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존재[자]가 아닌 무[없음]와 관계 맺을 수 있는 새로운 [존재의] 지평이 요구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다음에서 서양의 철학과 학문이 논의의 장 밖으로 몰아낸 무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면서 무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무 또는 없음[텅빔]에 대한 경험이 성스러움에 대한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살펴본다. 그 다음 서양과는 다른 존재이해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며 개념으로 파악한 한국인의 독특한 신에 대한 체험과 이름지음을 살펴보기로 한다. 존재(있음)의 지평이 아닌 없음(무·공·허)의 지평 속에서 어떻게 신을 만나고 있는지를 다석 류영모의 논의를 따라가며 고찰해 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새로운 신에 이르는 길들이 지시하고 있는 시대적 징표를 읽어내려 시도해 본다.


▶ 다음 편에서는 ‘한국인의 신 체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지난 편 보기





[덧붙이는 글]
이기상 교수님의 ‘허무주의 시대와 영성 - 존재의 불안 속에 만나는 신(神)의 숨결’은 < 에큐메니안 >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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