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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기혼사제안’에 반대 입장 밝혀 프랑스서 출간될 책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안에 입장 표명 “기혼 남성 서품은 사목적 재앙이다” 끌로셰 2020-01-13 16: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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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아마존 시노드 최종문건에서 언급된 기혼사제(viri probati)안을 두고 강력한 반대를 밝혔다. 


신학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교황청 경신사성 장관 로베르 사라(Robert Sarah) 추기경과 베네딕토 16세가 오는 15일 프랑스에서 출간하는 신간 <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프랑스어: Des profondeurs de nos coeurs, 영어: From The Depths Of Our hearts: Priesthood, Celibacy, And The Crisis of The Catholic Church)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마존 시노드 최종문건을 반영한 교황권고를 발표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라 추기경 본인 역시 참여한 시노드의 합의안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방적 태도에 제동을 건 상황이다. 


지난 13일 프랑스 일간지 < Le Figaro >와 < AP >는 각각 출간 전에 책의 내용을 입수해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 Le Figaro >는 이 책이 “베네딕토 16세와 기니 출신 추기경을 한데 모으는 영적 우정의 산물”이라고 표현했다. 베네딕토 16세와 사라 추기경은 책에서 “기혼 남성을 서품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사목적 재앙이며, 교회사적 혼란이고, 성직의 이해를 흐리게 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베네딕토 16세와 사라 추기경은 “교회의 일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찾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자녀와 같이 순종하는 두 ‘주교’”로 자신들을 규정하며 기혼사제안 반대가 교회를 분열시키기 위한 “말싸움, 정치 공작, 힘 싸움, 이념 공작, 악마와 같은 날선 비난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들은 지난 아마존 시노드 동안의 언론 보도와 회의 내용을 두고 “괴상한 언론 시노드”라며 “사제독신을 폄하하려는 나쁜 변호, 연출, 악마의 거짓말과 더불어 오늘날 유행하는 오류들에 반응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아마존 지역에 한정되는 기혼사제안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정이 아니라 전 세계 주교들이 모인 시노드에서 투표와 토의를 통해 합의한 것인 만큼,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종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바오로 6세를 인용해 독신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아마존 지역의 사제 부족이라는 현실에 따라 시노드에서 이를 논의할 것을 주문했다. 아마존 지역의 기혼사제 서품안은 아마존 시노드에서 찬성 128대 반대 41로 최종문건에 실린 바 있다.  


이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구장 시절 유대교 랍비와의 대담집에서 독신제가 “신앙이 아닌 규율의 문제이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개방적 입장을 보인바 있다. 


베네딕토 16세와 사라 추기경은 책을 통해 사제독신제를 두고 “사제서품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로 이어진다”며 “물론 직분의 실재적인 실효성은 직분의 성스러움과는 별개로 남아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제들의 성성이 자아내는 눈부신 풍성함을 괄시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베네딕토 16세는 “이러한 존재론적 절제는 육체와 성을 멸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성 요셉을 따라) 초대교회에도 기혼 남성들은 성적 절제를 지키겠다고 약속할 때만 성품성사를 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라 추기경은 기혼남성 사제서품과 같은 신학적 변화를 두고서 “교회는 복음의 뿌리로 돌아감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지 속세의 기준을 받아들임으로써 위기를 극복하지 않는다”며 기혼사제, 이혼한 신자들의 성체성사 등의 신학적 변화를 속세에 따른 타협이라고 비난했다.


< AP >는 책의 내용 중 “이처럼 주님을 섬기는 것은 한 남성의 재능 전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두 개의 소명을 동시에 수행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결혼을 거부하고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사제직의 기준이 된 것”이라는 베네딕토 16세의 주장을 인용했다. 이는 언뜻 재물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성서 구절을 떠올리게 해 논란이다.


상당수 가톨릭 언론과 신학자들은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하면서 “무조건적인 존경과 순종을 서약”한 것을 깨고 프란치스코 교황 임기의 중대한 결정 마다 ‘명예교황’(Pope Emeritus)으로서 교회 내에서 보수적인 입장으로 특정 사안에 개입하는 베네딕토 16세의 입장에 우려를 표했다.


미국 빌라노바 대학의 마시모 파졸리(Massimo Faggioli) 교수는 자신의 SNS에서 베네딕토 16세가 발언한 것을 두고 “심각한 배임”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가톨릭 일간지 < NCR >의 바티칸 특파원 조슈아 매켈위는 “자기 후임이 현재 숙고 중인 무언가에 대해 공개적으로 전임 교황이 말하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교황청 전문지 < Vatican Insider > 이아코포 스카라무치 기자는 “명예교황이 은둔하여 순종하겠다는 자기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현 교황과 명예교황의) 교황청 공존은 어렵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일간지 < La Croix > 바티칸 특파원 니콜라 스네즈 역시 자신의 SNS에서 베네딕토 16세의 발언을 “못되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에 칼을 꼽았다”며 “명예교황이 진정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으니 (명예교황에서) 로마교구의 명예주교로 직위를 개혁하는 일이 시급해졌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서전을 쓰기도 했던 오스틴 아이버레이는 “명예교황의 건강에 대한 최근 몇 달 간의 보도에 따르면 30분에 한 번 정신이 있을까 말까 한다”며 “그런데도 여전히 그는 자신이 충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지금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깎아내리는 입장을 내고 있는 것은 거리낄 것 없는 주변의 아첨꾼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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